빅딜이 시작된 뒤 줄곧 미로를 헤매온 삼성자동차 문제를 보노라면 씁쓸한
마음으로 "앤더슨의 법칙(Anderson''s Law)"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옳은 각도에서 본다면, 더욱 복잡해지는 문제는
없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는 방안이 뜻밖의 문제들에 부딪쳐 비틀거릴
때마다 미국 과학소설 작가 폴 앤더슨이 한 얘기는 거듭 확인됐다.

빅딜을 강요했고 빨리 합의를 보라고 다그치던 관리들이 마침내 그것이 너무
복잡한 일이라고 두 손을 들었고 이어 새로운 방안들이 거푸 나왔지만
삼성자동차 문제의 복잡성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삼성 그룹의 계열사들이 부채를 떠안는 방안은 소수 주주들과 외국인
주주들의 반발로 좌초됐다.

삼성자동차 문제에 책임의 일부가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삼성생명
보험의 주식을 내놓아 빚을 갚는 방안은 깔끔한 방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삼성생명보험의 상장을 전제로 하는데, 생명보험 주식의
상장이 특혜라는 여론이 일어 일이 꼬였다.

게다가 이 회장의 개인 재산 출연이 정부와 여론에 떠밀려 이루어진 터라
그 방안은 재산권의 심각한 침해라는 근본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를 사생아
처럼 덜컥 낳았다.

그렇게 일이 계속 꼬이면서 부산 지역의 민심이 현 정권에 아주 적대적이
됐고 단순한 경제적 문제가 복잡한 정치적 문제로 바뀌었다.

돌아다보면 우리는 한숨과 함께 깨닫게 된다.

만일 정부가 빅딜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삼성자동차
문제가 지금처럼 복잡해지진 않았으리라는 것을.

정부가 한번 경제 문제에 개입하면 그 문제엔 필연적으로 정치적 차원이
더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앤더슨의 법칙"에서 계 하나를 뽑아낼 수 있다.

"복잡한 문제에 정부가 개입한다면, 더더욱 복잡해진다"

이 계를 확인해주려는 것처럼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삼성자동차의 부산 공장이 가동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치 현실이 워낙 급박해진 까닭에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옆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덕분에 정치논리에서 나온 새로운 조건이 이미 존재하는 많은 조건들에
더해졌고, 삼성자동차 문제는 한결 더 복잡해졌다.

문제를 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경제 문제가 한번 정치화되면
탈정치화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지금 경제에 관한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모두 삼성자동차 문제는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경제논리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옳은 얘기다.

아쉽게도 그것은 비현실적인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취임한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의 지적처럼 정치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제약 조건들 아래서의 최적화"를 추구한다.

지금 민심을 많이 잃었고 부산 지역에서 특히 적대적인 눈길을 받는 현
정권으로선 총선거가 가까운 지금 부산 공장을 가동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현 정권이 그런 전제 아래 최적의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다.

모든 경제 문제들엔 그렇게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제약 조건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것들이 시장에서 경기자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들이라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그럴 경우에 그것들은
정치적 제약 조건들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되도록 규칙의 형태를 해야 되는
까닭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는 적어도 세 가지
전제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외부효과가 정부의 개입에 드는 비용보다 크다.

둘째, 정부 관리들이 관련된 비용들과 개인들의 선호들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졌다.

셋째, 관리들의 판단은 정치적 압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전제 조건들이 충족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부의 실패가 그리도 많은 까닭은 바로 그런 사정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삼성자동차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서는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이
충족되는 것이 무척 어렵다는 사실을 아프도록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정부의 주도 아래 근본적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터라, 지금 정부는
자칫하면 시장에 너무 깊이 간여해서 개별 문제들의 해결을 주도하는
당사자가 된다.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면서도 문제들을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것은, 특히 문제를 정치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실질적
과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