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철 < 산업2부장 >


코소보.

지난 두어달동안 언론에 자주 등장한 지명이다.

코소보를 "키워드"로 삼아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살펴보자.

미국은 왜 자기 일도 아닌데 이 전쟁에 끼여 들었는가.

전후 복구 비용을 유럽국가들이 왜 주로 부담할까.

혹 한국기업들도 복구사업에서 단맛을 볼 수 있을까.

"세계의 화약고"라는 이곳 발칸반도에서 78일 만에 포연이 걷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끄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유고는 나토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헤비급 복싱 선수가 플라이급 선수를 일방적으로 두들기고 KO승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토는 참 이상한 조직이다.

원래 소련의 무력침공으로부터 유럽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군사기구다.

미국이 앞장서고 유럽 여러 나라들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옛 소련이 허물어지면서 나토는 더이상 존속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미국은 나토를 여전히 품에 안고 싶었다.

유럽에 대한 입김을 계속 미치고 싶어서다.

미국은 프랑스 등의 반발을 무릅쓰고 나토를 오히려 확대 개편했다.

조직이 있으면 일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나토는 "일감"을 찾아나섰다.

독수리처럼 고공에서 빙빙 돌며 이곳 저곳을 살핀다.

그러다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는 먹이가 발견되면 날쌔게 잡아챈다.

지난 91년초 걸프전에서 이미 이런 "국제적 드라마"를 감상하지 않았던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정의 수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다국적연합군은 이라크를 초토화했다.

세계는 미국의 군사력을 보고 람보의 근육질 많은 몸을 연상하게 되었다.

올해초 유럽연합은 "유로"라는 새 돈을 만들었다.

미국은 이 돈의 흐름을 날카로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달러에 대항하는 강력한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보이자 내심
불안하기도 했다.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과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유럽의 발칸반도에 때마침 사담 후세인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이 그다.

자신의 정치기반을 굳히기 위해 이민족들을 대학살하는 잔혹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미국은 남의 나라 인권에도 관심이 많은 나라 아닌가.

밀로셰비치의 만행을 응징한다는 구실이면 어떤 무력을 쓰더라도 정당화될
수 있으리라.

미국은 유고를 공격할 때 온갖 신무기를 동원했다.

유고는 첨단무기의 시험장이 되었다.

미국산 일부 무기의 "우수성"이 입증됐다.

유럽 여러 나라들도 코소보 사태와 관련,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다.

미국이 나토라는 간판을 달고 유고를 공격하자 유럽국가들도 미국에
뒤질세라 공격에 나섰다.

새로 개발한 무기의 성능을 시험해 보는 데 실전만큼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유고의 "인종청소"도 잔인했지만 나토의 대 유고 폭격도 무자비했다.

"코소보 드라마"에서 한반도가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남북한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동족끼리 티격태격 다투다가는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희생이 우려됨은 물론이다.

유고의 전후복구 비용은 앞으로 5년간 4백억~5백억달러로 추산된다.

EU국가들이 이 비용을 상당부분 부담할 듯하다.

물론 이들 국가는 이 돈을 들이는 한편 여기서 대규모 일거리를 찾을
것이므로 "특수"를 누리게 된다.

애써 지은 도시 구조물을 폭파하고 그것을 다시 지음으로써 "전후 호경기"를
유발하는 아이러니...

"발칸 특수" 국물이 한국기업에도 몇 방울 떨어질 수 있을까.

일단 전망이 그리 밝지는 않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이 전승국의 지위를 내세워 복구사업을 독차지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이나 일본기업들에 대해 "이번 전쟁에 기여한 것이 무엇이냐"며
냉담한 입장을 보인다.

한국기업은 수백억달러 짜리의 이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더라도 기를 쓰고
참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럽기업들과 컨소시엄을 이루어 건설시장에 뛰어들거나 기계 전자기기
섬유 자동차 등을 팔 수 있는 틈새를 찾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먼저 발칸반도에 초점을 맞추면 이익이 샘솟는
구멍이 보이리라.

피비린내와 화약냄새가 뒤범벅된 유고에서 이권을 찾아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Global) 시장"에서 초국적 기업들은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강대국 정치지도자들은 "글로벌 감각"을 갖추고 국익을 위해 지구촌 전체를
살피고 있다.

세계는 이처럼 거시적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이는 측면이 있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고위관료들은 이를 알기나 하는가.

자기 밥그릇 챙기는 미시적 행위에 매달려 강대국의 정책 흐름을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