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빈 토플러 < 미국 미래학자 >

금세기 마지막해인 올해에는 Y2K(컴퓨터의 2000년 연도인식 오류)문제뿐만
아니라 이상하고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금년은 종교에서 말하는 묵시록의 해이기도 하다.

최근 매우 기괴한 일이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교외에서 발생했다.

주위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득찬 10대 고교생 2명이 교사와 동료학생 12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자신들도 자살한 사건이다.

미국 전역이 경악과 분노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의 10대 고교생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그들만의 목소리를 인터넷으로
표출했다.

그중에는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살인자들에 대한 동정
여론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그들도 어떻게 보면 사회구조의 희생자라는 것이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인간이 저지른 살인치고 지나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어떤 경우에는 이해와 동정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교내 이지메나 파벌의 역할 등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한 수많은 논쟁
들을 불러 일으키는 촉매가 됐다.

파벌과 같은 편가르기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 안에는 사제폭탄을 제조하는 데 이용될 수도 있는 정보들이 널려
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정보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무정부적이고 허무한 가사내용을 담은 테크노 록음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도 높다.

학생들이 사고를 저지르기 전에 문제 학생들의 흉포함을 미리 알아채고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학교당국에도 책임이 있다.

교사들이 사전에 이러한 문제아들을 찾아내 개별적인 심리상담의 자리를
만들었어야 했다.

교실에서 지식전달만 할 게 아니라 인성수양을 위해 기도시간을 충분히
가졌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이들은 청소년들이 쉽게 범죄의 길로 빠져든 것도 이러한 교육의 부재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 교육에 충실하지 못한 부모들도 면책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 그 누구를 탓하기 보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은 살인을 저지른 당사자들
이란 지극히 당연한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논쟁속에서 유감스럽게도 정작 우리의 교육제도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교육 시스템은 산업화시대 속에서 태동했다.

그리고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서 체계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인터넷 및 정보화시대에서는 기존의 대중교육 시스템은
서서히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과거 기성세대한테나 어울릴 뿐이다.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기계적이고 단순한 반복위주의 학습으론 더 이상
정보화사회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키워내기가 불가능하다.

기계적이며 반복적인 노동은 부가가치가 낮아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당한다.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교육체제속에서 자라난 젊은이들은 개성과 창의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이런 교육체제는 수백만명의 학생들을 똑같이 공장의 조립라인으로 내보내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제 기존 학교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총격을 가한 학생들이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새로운 커리큘럼의 교육을
받았더라도 이같은 살인극을 과연 저질렀을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아마도 그들은 학교안에서보다는 학교밖에서 더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폭력적인 가사를 담은 대중가요, 인종차별을 강조하는 인터넷 웹사이트,
이성을 마비시키는 TV, 악당들을 쓸어버려야 할 때가 됐다고 소리치는 유명
배우가 나오는 광고 등으로부터 훨씬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실에서보다는 학교 울타리 밖에서 더 많은 것들을
접하고 배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나 교사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사들, 즉 마약판매상 가게점원 강도들
로부터도 많은 것을 보고 접한다.

교육은 교사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경험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
이 있다면 이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기술자나 조종사 예술가 회계사 엔지니어 컴퓨터프로그래머등은 좁은
의미에서는 선생님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젊은이들에게 물려줄 훌륭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전세계에 충격을 준 콜로라도의 비극은 이미 예고돼온 비극이다.

즉 기성세대가 교육을 받았던 상황(산업화시대)과는 전혀 다른 환경속에서
자라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을 변화된 환경에 맞춰 적절히 이끌고 가르쳐
줄 사회 전체적인 교육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공공자금으로 종교학교를 지원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이제 그 논쟁은 공공자금으로 가정 및 사회교육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할지의
여부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공공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교육을 담당하는 부모나 교사 사회인사들
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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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김재창 국제부기자 char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