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복 < 외교안보연 교수 >

최근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5일간 중국을 방문하고 7일
귀국했다.

이번 김영남의 중국 방문은 대표단의 규모와 내용에서 볼 때 중.북한간
최고위급 교류회복의 효과를 갖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김영남의 방중은 결과적으로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시기적으로 지연
시키면서 그의 방중을 위한 내외적 여건형성을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갖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김정일의 후계공식화 이후 중국이 희망해 온 중국지도자의 방북의지를
조기 실현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당국이 중국 지도체제나 중국이 추진해 온 사회주의 시장화
개혁에 전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에서 김정일의 중국방문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김정일의 방중을 위해서는 중국 개혁정책에 대한 새로운 평가 등 북한내
정치적 조건이나 명분 구축이 필요할 것이다.

김영남은 이번 방문에서 과거 비판적이었던 중국의 노선에 대해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사업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중국의 당과 인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김정일의 중국방문을 위한 북한내 정치적 조건
마련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이번 김영남 방중의 중요한 의미는 김일성 사후 중.북한간에 단절되
었던 다양한 채널들이 복구될 수 있는 계기를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번 대표단 구성이 경제실무보다는 당.정.군 대표 위주로 구성되었
다는 점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

과거 중.북한간에는 대부분 현안문제의 해결이 외교부를 통한 국가간 채널
보다 당 대 당의 채널이나 군부 및 개인 등 기타의 다양한 채널에 의존해
왔다.

김일성 사후 양국간에 외교부를 통한 국가간 채널이 유지되어 왔다고 하더라
도 상호간에 출현하는 다양한 현안문제의 해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
다.

특히 한반도 문제해결에 대한 중국의 효과적 역할도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덩샤오핑(등소평)과 김일성 사망 이후 중.북한 양국간에 이루어진 전반적
세대교체로 과거 양국간에 작동해왔던 채널들의 완전한 복구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김영남 방중과 앞으로 연결될 중.북한 정상교류의
회복은 김일성 사후 붕괴되었거나 단절되었던 일부 채널을 복구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금년 하반기는 이번 김영남의 방중을 계기로 중.북한관계가
전면 정상화되어 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최근 코소보사태로 촉발된 미.중 관계의 악화와 미국중심의 단극화
질서 구축을 저지하려는 중.러간의 전략적 협력관계의 강화라는 외적 요인이
김영남 방중의 중요한 환경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이
다.

김영남의 방중을 계기로 새롭게 전개될 중.북한 관계의 발전을 중.러.북한간
북방삼각관계의 회복으로 과대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북한 관계 회복정책은 중국의 지도체제 성격이나 외교정책의
기본성격상 과거와 같은 동맹관계로의 회귀는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중.북한간의 교류.협력 증대는 기존의 중.북한간의 특수관계를 국가
이익과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한 일반국가 관계로 정상화시키는 계기나 과정으
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중간에는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냉전체제의 해소, 북한의 개방,
탈북자문제 등 북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현안들이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현안문제 해결에 대한 한.중 양국의 협력은 물론 중국의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의 수행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안문제들의 해결에 있어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일정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중.북한 관계가 이들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대화나 실효적 협상 또는 정책조율이 가능해질 수 있는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영남의 방중과 앞으로 전망되는 양국간 정상교류를 통해
그동안 붕괴되었던 중.북한간의 다양한 채널들이 어느정도 복구된다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이러한 사태발전은 지금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과거의 대증요법적
접근 방식에서 탈피,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를 통한 근본적 해결방식을 추진
해 가는데 대단히 유리한 환경요인으로 작용해갈 것이다.

한반도 냉전구조해체를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방식은 한반도에 대한 중국
의 기본인식이나 정책과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