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옹진현 부양강에는 창린도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었다.

고려 고종13년(1226) 이곳에 대월국의 왕자 이용상이 표류해 왔다.

대월국은 오늘날 베트남이다.

2백15년동안 이어져온 대월국이 망하자 왕의 숙부였던 그가 망명길에 올라
바다를 헤매다가 닿은 곳이 창린도였다.

고종의 배려로 옹진에 정착한 그는 1253년 임시수도 강화를 목표로 진격해
오는 몽고군을 옹진에서 막아 패퇴시키는 수훈을 세운다.

고종은 그의 전공을 기려 그가 살던 읍의 광대산을 대월국에 있는 산의 이름
을 따다가 화산으로 부르게 하고 그를 화산군에 봉했다.

그가 몽고군을 패퇴시킨 것을 기념하는 수항문과 기적비도 세웠다.

그뒤 이용상의 아들 간은 고려의 예문관대제학, 용진은 감수국사, 유는
상서우박사, 맹예는 호조상서를 지내는 등 가문이 날로 번성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그의 후손들은 승지 판윤 성균관박사 등을 지내면서
문명을 떨쳤다.

지금 남한에는 이용상의 후손인 화산이씨 2백여세대가 인천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옛 대월국의 건국지였던 베트남 하박주 딘방마을에서는 요즘도 해마다
음력 3월15일(양력 4월30일)이면 대월국시조 리(Ly)태조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린다.

금년 축제에는 한국의 화산이씨 종친회장이 직계후손으로 초청돼 극진한
대우를 받은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그의 후손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란다.

한국과 비슷한 넓이의 영토, 한때 한문을 상용했던 유교국, 식민지와
남북분단의 아픈 상처 등 베트남은 한국과 역사나 문화의 유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나라다.

베트남전쟁때 서로 총부리를 맞댄 악연도 있었지만 지난 92년 수교이후
한국은 베트남의 제5위 투자국이 돼 4백여개의 기업이 진출해 있다.

7백여년전 베트남 왕족 이용상과의 선한 인연을 바탕으로 경제는 물론 문화
교류의 문도 활짝 열렸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