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록 <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crwoo@wooyun.co.kr >


패기만만하던 초년 변호사시절때의 일이다.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해야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날 새로 영업을 시작하는 한 고객이 찾아왔다.

그는 표준계약서안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했다.

나는 그 고객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완벽한(물론
혼자의 생각이지만) 계약서안을 만들어 고객에게 제시했다.

나에게 일을 부탁했던 법무담당 직원은 계약서가 아주 잘됐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그 고객에게서 연락이 왔다.

계약서 안을 다시 수정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 고객은 영업부서 사람들의 말이 내가 만들어준 계약서를
가지고서는 도저히 영업을 못하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위험이라고는 하나도 부담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로 어떻게 영업을 하라는
말이냐고 항의가 대단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결국 위험으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받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든
계약서의 조문들을 다시 수정했다.

물론 "부담해도 좋다고 판단되는 위험"을 가리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완벽한 계약서 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작업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완벽한 것이 반드시 제일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후 이것은 나의 변호사 생활에 매우 중요한 지침이 됐다.

남들과 더불어 살아가자면 위험을 합리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내가 부담하는 위험이 어떠한 것인지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 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늘도 "영업과 관리의 갈등"을 접할 때 마다 계산된 위험 부담을 통해
합리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