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원도 영월의 동강.

동강 구석구석을 관찰하던 법무법인 세종의 오종한(34) 변호사는 어느듯
동강에 빠져들었다.

동강 탐사에는 환경법의 대가인 서울법대의 조홍식 교수와 한인섭 교수,
자연환경과학정보연구소 한상훈 박사가 동반했다.

이들이 동강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동강댐 건설의 찬반 논란이 거세자 동강이 어떤 곳인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 변호사를 비롯한 탐사참가자들은 투명하리 만큼 맑고 깨끗한 물과
동강의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오 변호사는 동강이 쉬리 어름치 등 천연기념물의 보고임을 깨닫는
순간 이곳을 꼭 보전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남달리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3시간 남짓한 동강 탐사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오 변호사는 자연그대로의 동강을 지키기 위해 민변을 통해 동강댐 건설
취소처분 소송을 내기로 했다.

동강댐 건설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다는 판단
에서다.

그는 동강지역은 석회암 지대로 지반이 약한데다 2백40여개의 크고 작은
석회암 동굴이 있어 댐건설시 지반붕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98m의 댐 높이까지 물이 차면 수압에 의해 댐이 붕괴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는 건설교통부가 오는 8월 환경영향평가가 끝나는대로 공사를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법적인 대응책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저수량 6억9천만t의 동강댐 건설보다는 연간 7억t의 물이 새는 원인인
수도관 교체등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이처럼 환경에 관심을 기울리게 된 것은 지난 94년 미국 시애틀
워싱턴대학 국제변호사(LLM) 과정의 국제환경법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하드 트레이닝을 받았다.

꽉 짜여진 커리큘럼은 그를 환경전문가로 변신시켰다.

변호사 출신인 환경법의 대가 로저스 교수, 기후변화협약의 UN자문단
일원인 다니엘 보단스키 교수등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오 변호사는 "국제환경협약에 있어 개발도상국의 차등대우"란 논문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환경변호사가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95년 귀국한 그는 경실련의 환경개발센터(현 환경정의시민연합)의 일을
도왔다.

첫 소송은 대기업인 한전을 대상으로 한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립부지
사전승인 취소처분소송이었다.

원전이 가동되면 온배수가 해양생태계를 파괴해 주민들의 환경적이익이
침해당한다는 내용이다.

대법원까지 가는 싸움에서 비록 졌지만 작은 승리를 하나 얻었다.

"원고적격"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원고적격이란 소송에서 불이익 처분을 다투기 위해서는 법률상 이익이
있어야 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판례는 이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주민의 환경상
이익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으로서는 큰 결단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환경과 관련한 소송에서 자주 패소할 것을 각오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은 환경문제를 쉽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돼 어쩔수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헌법에도 보장된 환경권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환경은 후손의 것을 빌려쓰는 것일 뿐이라는게 그의
환경론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현재 민변의 환경위원회의 위원장,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정책위원등을 맡고 있다.

오 변호사는 소송전문변호사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수많은 분쟁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한화종금의 적대적 M&A와 관련한 소송은 대표적 사건이다.

현재 한솔종금과 코오롱의 외환거래 분쟁소송, 한국카본과 일본의
오리베스트간 합작계약과 관련한 분쟁 등 30여건의 소송을 진행중이다.

환경의 파수꾼임을 자부하는 그는 "한번 파괴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환경"이라며 동강탐사때 찍은 사진을 보면서 동강의 아름다움에 또다시 빠져
들었다.

< 김문권 기자 mkkim@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