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 경제평론가. 소설가 >

숲길을 오르노라니 문득 짙어진 봄빛에 가벼운 탄식이 나온다.

철이 바뀌는 것조차 텔레비전에서 먼저 알게 되는 세상에서도 봄은 늘
그렇게 문득 다가선다.

망울들이 발그스레해진 진달래, 파란 잎들을 막 내놓기 시작한 조팝나무,
어느 사인엔가 노란 꽃들을 흐드러지게 피어올린 생강나무-.

봄비 덕분에 모두 생기가 넘친다.

영동엔 눈이 내렸다고 한다.

"샤갈의 마을에는 삼월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이
바르르 떤다"

그러나 김춘수의 시에서와는 달리 길에서 만나는 사내들은 모두 생기가
없다.

경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실업은 계속 늘어나니,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두운 우리 경제를 떠올리고 내 마음도 따라 어두워진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이 봄에 새로 직업 시장에 참여한 젊은이들이 대부분
일자리를 찾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정부는 전체 실업률에 마음을 쓸 뿐 이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젊은이들의 실업에 관해선 별다른 논의가 없다.

물론 전체 실업률은 으뜸가는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실업의 내용도 중요하다.

살아있는 존재이므로 경제는 활발한 신진대사를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오래 되고 덜 생산적인 생산 요소들은 새롭고 보다 생산적인 생산 요소들로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기술들과 공정들이 도입되고 새로운 지식과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여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굳어서 우리 기업들은 이런 신진대사
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정리해고조차 실질적으로는 어려운 형편이다.

젊고 임금이 싸고 생산성이 높은 젊은이들을 쓸 수 없으니,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제대로 높아질 수 없다.

이것은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뜻한다.

걱정스럽게도 손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우리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데 큰 투자를 했다.

지식의 노후화가 점점 빨라지는 현대사회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지닌 새로운
지식과 태도는 우리 사회의 발전에서 결정적 중요성을 지닌다.

우리 기업들에 생기를 불어넣을 그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함으로써
그런 투자는 헛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

속을 더욱 쓰리게 하는 것은 당사자들인 젊은이들조차 얘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도 신진대사를 해야될 것 아니냐고 지적한 젊은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현상 유지를 꾀하는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새로운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려고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안다는 전제 아래 구성되고 운영된다.

따라서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 모르는 개인들이나 집단들의 존재는
사회의 효율적 움직임을 방해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합치하는 길을 놓치는
것은 모두에게 큰 불행이다.

"삼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낙과 지아비가 될 나이에도 되지 못한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 자신의 이익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우리 젊은이들을 깨우칠 길은
정말 없는 것일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