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동법에 명시된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문제가
노동계의 노사정위원회 복귀와 관련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계
가 이달초 이 규정의 폐지를 노사정위 복귀의 중요한 조건으로 내건데 이어
이기호 노동부장관이 지난 25일 경제단체대표들에게 노동계 요구의 수용을
요청하고 국민회의는 전임자 임금지급 처벌 규정의 삭제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정부의 방침은 이미 폐지 쪽으로 굳어진듯 하다. 그러나 경영계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조만간 이 문제를 둘러싼
노.사간,사.정간 갈등이 표면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97년3월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면서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다만 시행
시기는 2002년으로 미뤘었다. 정부가 이같은 규정의 폐지를 검토하게 된
것은 최근 노동계의 장외 총력투쟁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든 노동계를 노사정위로 불러들여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보자는 생각일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주고 받고 끝낼 일이
아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노동법 개정협상 당시 복수노조허용문제와
더불어 막판까지 첨예하게 대립됐던 핵심 사안이다. 결국 경영계의 입장이
관철되긴 했지만 대신 경영계는 복수노조의 즉각적 허용 등 중요한 양보를
해야 했었다. 이 문제를 재론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경영계가 펄쩍 뛰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노조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정부와 여당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경제논리보다 정치적 타협에 치우쳐 개정노동법의 기본정신을
망각해선 안된다. 정부가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노동법을 개정한 것은 노동
시장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잘못된 관행중 대표적인
것이 노조전임자에게 사용자가 임금을 주는 것이다. 이는 선진국에선 거의
찾아볼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새노동법에서는 무노.무임원칙과 더불어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명문화됐으며 다만 노조들의 재정사정을 감안,
시행에 5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행도 되기 전에 또다시 법을 고쳐 문제를 원점으로 돌리겠다니
이 무슨 모순이며 과거로의 퇴행인가. 사실 근로현장을 떠나 노조활동만
하는 전임자에게 기업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2002년부터가 아니라 지금
당장 고쳐야할 잘못된 관행인 것이다.

무노.무임원칙은 노사교섭에서 존중돼야할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다.
노동을 제공하지 않는 노조 전임자에게 계속 임금을 지급한다는 것은 이제야
간신히 정착되기 시작한 무노.무임원칙을 짓밟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은 시행을 앞당기지는 못하더라도 유예기간이
끝나는 즉시 엄격하게 시행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