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이나 고궁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 하나 있다.

웨딩드레스로 성장하고 두꺼운 화장을 한 신부와 어색한 표정의 신랑
모습이다.

바람 불고 추운 날에도 신부는 대체로 어깨의 맨살을 드러내고 사진속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추위와 뭇시선을 견디며 억지 사랑을 연기한다.

신랑도 평생에 한 번 뿐인 행사를 무사히 치뤄내야 한다는 결의로
연출자가 시키는대로 신부의 볼에 입술을 대기도 하며 낯뜨거운 영화의
한 장면을 모방하느라 애쓴다.

신부가 보조촬영자들의 도움으로 웨딩드레스의 아랫자락을 높이 치켜들고
걸어 갈 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먼지 묻어 더러운 바지가랑이나 힘겨워
일그러진 구두굽은 행복 뒤에 숨은 음흉한 권태의 얼굴이다.

어쩌면 오염된 우리 결혼 문화의 한 상징적 모습이기도 하다.

누가 강요라도 한 것처럼 공부를 많이 한 젊은이거나 아니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말거나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하는 이 풍습을
거부하지 못하고 치뤄내는 이유는 뭘까.

현대 상업주의는 사랑도 행복도 결혼도 순식간에 물질화시키려 한다.

신랑도 신부도 상품이 되는 그 순간에만 잠시 주인공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행복한 순간이라는 착각을 하도록 한다.

그 착각 뒤에는 사랑은 곧 퇴색하며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 되기 전에
증거로써 사진이든 테이프든 남겨야 한다는 강박 심리를 이용하려는 상술이
있다.

정말 한 시인의 말대로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

사랑은 곧 퇴색하며 행복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연기된 사랑은 고통이며 가시적일 뿐인 행복은 가짜 행복임을 알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젊은이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우리를 정말 행복하게 한 순간은 어떤 순간인지, 우리의 삶이 어떤 순간
순간의 연속이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연기된 사랑과 가시적 행복 속에서만
만족할 수 있는 게 진짜 나의 삶인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3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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