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부채, 왜 외국통계가 많은가 ]

이용만 <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ymlee@erinet.lgeri.co.kr >

얼마전 독일의 도이치은행은 99년 한국 정부의 부채규모가 GDP(국내총생산)
의 80%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한 세미나에서 IMF(국제통화기금)의 비토
탄지(Vito Tanzi) 재정국장은 한국 정부부채가 97년 GDP의 46% 수준에서
98년에는 GDP의 70% 수준으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통계는 이와 사뭇 다르다.

정부통계에 따르면 97년 정부부채는 47조원으로 GDP의 11.3%에 지나지
않는다.

98년 자료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으나 대략 72조원으로 GDP의 16.8%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공식통계와 IMF의 추정 간에는 무려 4배 이상의 격차가 있는
셈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정부의 진정한 부채는 도대체 어느 정도이며, 우리가 갚아나갈 수 있는
수준인가.

정부부채는 말 그대로 정부가 안고 있는 빚이다.

정부의 살림살이나 일반 서민들의 살림살이나 그 운영 원리는 똑 같다.

정부부채는 정부가 수입 이상으로 지출할 때(이를 재정적자라 부른다)
발생한다.

정부는 재정적자가 발생할 때 두 가지 방법으로 부족분을 충당한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직접 차입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채권을 발행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정부부채의 규모를 알고 싶다면 정부의 차입금 잔액과 채권발행액
잔액을 더하면 된다.

이처럼 정부부채의 정의가 명확하고 부채를 구하는 방법 또한 혼란의
여지가 없음에도 정부와 IMF간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우선 부채의 범위에
대한 차이 때문이다.

정부의 공식통계에는 지방정부의 부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IMF는 지방정부가 파산하면 그 부채는 결국 중앙정부가 갚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지방정부의 부채도 정부부채에 포함시키고 있다.

일반 가계로 치자면 부인이나 자식의 부채도 가장의 부채로 보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차이는 지급보증의 포함 여부에 의해 발생한다.

지급보증은 우발적 채무라고 하여 부채에서 제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IMF는 지급보증도 정부부채에 포함시키고 있다.

98년 말 현재 정부의 지급보증액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채권 41조원과
시중은행들의 단기외채 중장기전환에 따른 지급보증액 26조원, 그리고
기타 3조원을 합하여 모두 70조원에 이른다.

여기에다가 한국은행이 IMF로부터 빌린 유동성 자금 20조원(162억달러)을
포함시키면 지급보증액은 모두 90조원에 달한다.

IMF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까지 정부부채로 계상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정부가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결국 정부의
부채로 귀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도이치은행은 더 나아가 부실기업의 해외부채까지 정부부채로 포함시키는
과단성을 보이고 있다.

부실기업이 파산하게 되면 대외신인도 때문에 적어도 해외부채만은 정부가
대신 지불해줄 것이라는 가정하에 부실기업의 해외부채를 정부부채에
포함시킨 것이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민간부문의 부채를 정부부채로 계상하는 것은 마치
분가한 자식의 예상부채까지 아버지의 부채로 보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로 다소 무리가 있는 주장이다.

더군다나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나 부실기업의 해외부채 규모를
측정하는 정확한 기준이 없는 데다 이를 정부가 모두 떠안을 것이라는
가정 또한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IMF나 도이치은행의 주장은 다소 과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8년말 현재 정부의 부채는 중앙정부 부채만 생각할 경우 72조원이며,
지방정부 부채와 지급보증(IMF자금 포함)을 포함할 경우 1백84조원
정도이다.

이 액수는 GDP의 43%에 해당되는 규모로 상당히 많은 부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평균 부채비율 70%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규모이다.

더군다나 정부부채중 상당부분은 부실채권의 매각을 통해 상환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10여년간 정부가 살림살이를 잘 꾸려나간다면 정부부채를
갚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