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4일 전경련 회장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앞으로
노사문제는 기업중심으로 풀어나가겠다"고 언급한 것은 향후 노사정책의
방향과 관련,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사문제에 관한 김 대통령의
말을 요약하면 무한경쟁시대에는 기업을 살리는 가운데 기업과 근로자에게
권리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며 노동자도 기업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업도 근로자도 함께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근로자의 정당한 권익은 보호하겠지만 국가경제를 희생시키는 행위나 불법.
폭력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노사관계의 중요성과 엄정한 법의 집행을 역설한, 너무도
당연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계기로 노.정갈등이 고조되고 노동계의 임.단협상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서 나온 언급이기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문제를 기업중심으로 풀겠다는 말의 뜻은 몇갈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선 기업이 살아야 이윤분배가 이뤄지는 만큼 근로자들이 기업의
중요성을 먼저 인정하고 노사안정에 노력해줄 것을 당부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올해 임단협상에서 상급노동단체들이 단위사업장 노조를
제쳐두고 전면에 나서 공동교섭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언급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재계의 논리에 손을 들어주었다고도 할수 있겠지만, 우리는 김
대통령이 중요한 시점에서 화약고같은 노사문제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태도를
보여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3월 들어 노동계는 지금까지의 고용안정
투쟁과 병행해 단위노조별 교섭이 아닌 공동교섭을 통해 임금 5.5~7.7%
인상과 연봉제 철폐 등을 관철시키기로 하고 본격적인 임.단협상 투쟁에
나서고 있다. 한국노총은 개별기업노조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아 "공동교섭
본부"를 발족시킨다는 계획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다.

이같은 공동교섭은 노동단체들의 세불리기 경쟁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클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각 사업장의 특수성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급단체들이 어떻게 합리적인 교섭을 벌일 수 있을 것이며
또 협상결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수 있을 것인가. 임.단협상을 포함,
단위사업장의 노사협상은 그 사업장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개별기업노사간에
이루어져야 옳다. 특히 노동계의 장외투쟁을 놓고도 상급단체와 산업현장
근로자간에 시각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사문제를 기업중심으로 풀어나가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이 단순히 노.정간
물밑대화에 대한 재계의 불만을 다독거리기 위한 립서비스로 끝나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약속이 어떤식으로 구체화되어 정책에 반영되고 실천될지
지켜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