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는 조선시대 육의전이 있던 거리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금난전권이 폐지되자 배오개(종로4가)와 동대문 일대는
국내 포목거래의 중심지가 됐다.

동대문상권이 커지자 배오개 상인 박승직은 1905년 7월 다른 포목상 장두현
최인성 등과 함께 광장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자본금 7만8천원의 이 회사는 조선인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주식회사로
동대문시장의 경영을 담당했다.

동대문시장은 이후 전차의 개통으로 더욱 번창, 남대문시장과 서울의 양대
시장권을 형성했다.

광장시장과 평화시장으로 대별되던 이 재래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94년 동평화시장 뒷쪽에 ''팀204''가 들어서면서부터.

이때부터 동대문길 동쪽에 아트프라자 우노꼬레 혜양엘리시움 디자이너클럽
, 서쪽에 프레야타운(구 거평프레야) 밀리오레가 생겼다.

최근엔 밀리오레 북쪽에 두산타워가 문을 열었다.

이들 세 상가는 주차장 등 재래시장의 난제를 해결하고 패션류 취급점을
대거 입점시킴으로써 동대문시장을 원단 중심 혼수시장에서 최첨단 패션타운
으로 탈바꿈시켰다.

서울 패션상권의 중심지가 남대문에서 동대문으로 옮겨갔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밀리오레는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일본인들의 결제 편의를 위해 JCB에
가맹했다.

두산타워의 경우 인터넷마케팅을 펼치고 일본 중국 대만 홍콩 러시아 등에
홍보사절단을 파견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재래시장의 변신은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시설 현대화와 대대적인 홍보보다 중요한 건 판매되는 상품의
품질이다.

남대문시장의 자체조사 결과 무분별한 디자인복제가 재래 의류시장의 가장
큰문제로 지적됐거니와 디자인개발과 품질향상이 최대과제다.

궁극적인 승부는 주차장과 에어컨, 이벤트가 아니라 누가 얼마나 좋은
물건을 내놓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상가마다 비슷한 품목과 전략으로 가격경쟁만 할게 아니라 도.소매 등
운영방향을 분명히 하고 취급품목을 확실히 차별화해야 한다.

베끼기에서 벗어나 진정 창의적인 옷을선보임으로써 동대문시장 활서화가
봉제한국에서 패션한국으로 바뀌는 촉매제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