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림화와 고효율"

지난해 민영화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공기업들에 이 두단어는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자 가고자하는 목적지였다.

가치 판단때 예외없이 적용되는 잣대이기도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공기업들은 엄청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인원과 급여상의 "군살빼기"는 겉모습에 불과하다.

경쟁력과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결과는 각종 실적지표가 개선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매머드급 덩치임에도 활발하게 경영혁신에 나서고 있는 공기업 3곳의
변화상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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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장영식 사장은 지난해 5월 사장 취임직후 고위직 간부에 대한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민간기업으로 따지면 전무에 해당하는 집행간부를 25% 감축하고 본사의
7개 처(실)를 축소했다.

"때를 놓치면 과감한 구조조정이 힘들어 진다"는게 장 사장이 전격 인사를
단행한 배경이었다.

이후 한전은 본격적인 군살빼기에 들어가 지금까지 집행간부 4명을 줄이고
14개 처(실), 41개 부, 사업소 29개를 폐지했다.

직제감축과 명예퇴직으로 덜어 낸 인력은 3천7백65명.

정부에서 제시한 가이드라인보다 목표를 39%나 초과 달성했다.

거대 공룡으로 일컬어지던 한전은 공기업 민영화 원년이었던 지난 한해가
변화에 순응하려는 혹심한 시련기였던 셈이다.

오는 5월 처(실)장급 이상은 사장과 경영계약을 맺는다.

이러면 매년 업무실적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고 인센티브 성과급도 받게
된다.

자리만 지키면 됐던 시절은 이젠 옛날이 됐다.

조직과 함께 사업도 슬림화시켰다.

"곁가지 사업은 없앤다"는 장 사장의 경영방침에 따라 정보통신 회사
출자지분을 처분키로했다.

해외에서 벌이던 자원개발사업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을 제외하곤 모두
포기했다.

전산업무도 아웃소싱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한해 8백40억원의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슬림화된 조직으로 업무를 처리하니까 노동생산성은 오르게 돼있다.

1인당 7백21만kwh였던 전력판매량은 지난해 7백32만kwh로 뛰었고
노동생산성은 1.5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전이 경영혁신 과정에서 톡톡히 재미를 본 부문은 연료비와
노후 발전설비.

높은 가격에 장기로 맺어진 유연탄은 수입계약을 재조정했다.

대신 가격이 크게 하락한 현물시장에서 사들이는 물량을 늘렸다.

외화지출을 감안해 국내산 무연탄 발전을 늘렸다.

발전연료 저가구매로 1억4천만달러를 벌었고 무연탄 사용으로 1억2천만달러
어치의 외화를 절약했다.

경영혁신은 노후 발전설비 매각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한전은 그동안 계획 수명이 지난 발전설비는 고철값에 내다 팔았다.

지난해엔 사정이 달랐다.

엘니뇨 현상으로 전력수요가 단기간 급증할 것인 만큼 발전설비 수요도
있다고 판단, 국제입찰에 부쳤다.

예상은 적중했다.

미국의 발전업체는 노후한 군산.영월 복합화력발전소를 5천5백70만달러를
주고 사갔다.

철거비 운송비 보험료 등 모든 비용(약 1백20억원)을 매수자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한전은 또 필리핀 말라야 발전소 성능복구공사와 중국 진산원전 시운전요원
교육, 대만 포모사 화력 운전자문 용역, 북한 KEDO원전 건설사업 등을 통해서
3천7백39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씀씀이까지 줄인 덕택에 한전은 지난해 외채규모를
98.8억달러로 묶어놓는데 성공했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지난해말 한전 외채는 1백12억달러여야 했다.

한전이 지난해 증시안정과 주주보호를 위해 두차례에 걸쳐 사들인 자사주도
효자역할을 톡톡히 했다.

1천6만주를 사들였는데 주가가 올라 2천억원 이상의 평가익을 기록하고
있다.

한전은 경영혁신과 함께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중이다.

오는 2009년까지 구조개편이 이뤄지면 한전은 발전.배전을 떼어낸
송전회사의 역할을 하게 된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