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타계한 후세인 요르단 국왕은 "중립적 외교술"에 능한 인물로
꼽힌다.

상황에 따라 처세가 능한 탓으로 그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는 평를 받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 외교적 처세는 아마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십상인
위치에 있는 요르단의 지정학적 특성에서 나온 산물인지도 모른다.

중동국가이면서 여타국가와 다르게 요르단은 석유가 나오지 않는다.

인광석이 나오기는 하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인 자원빈국이다.

남한 크기의 면적에 인구 4백50만명인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이락
등과 접하고 있어 수차례의 중동전쟁을 격는 등늘 분쟁의 와중에 있어왔다.

분쟁에 덜 휩쓸리고 국가의 이익을 지키려면 이해 당사국의 의중을 보다
살펴야 하고, 화해를 위한 중재자로 나서고,때로는 국토가 완충지대의 역활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선지 요르단을 근래에는 "중동의 완충지대" 혹은 "중동의 스위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국왕의 "줄다리기 외교"때문에 생긴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왕성한 중재력을 과시하는 한편 요르단이 인구수로 따져 외국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로 만들어 실리에도 탁월한 수완을 보였다.

사냥 수상스키 스쿠버다이빙 심해낚시 펜싱 카레이셔 제트기조종 등 만능
스포츠 맨이기도 한 후세인 국왕은 국민들로 부터 인기가 매우 높았다.

상.하 양원제를 도입하는 등 요르단의 왕정을 근대화된 입헌군주국으로
끌어왔고, 민주화 등에도 관심을 보여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걸프전 당시에는 다국적군에 동참을 거부해 국제적으로 외로웠으나
국민들로부터는 "아랍세계의 자존심을 지킨 영웅"으로 칭송됐다.

요르단의 정식이름은 "요르단 하세미테왕국"이다.

46년간 왕위에 있은 후세인 국왕은 회교창시자 모하메드의 39대 손이다.

83년에는 누르왕비와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다.

요르단이 국상의 슬픔을 벗어나 "중동의 눈"으로의 역활을 재개하길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