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소비 투자 등 실물부문의 경기지표가 호전기미를 보이자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낙관론을 펼치는 이들은 경기지표만을 놓고 볼때 한국경제가 혹한의 겨울을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4.4분기에 경기저점을 통과한 것 같다거나 IMF체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지표해석에 신중해야 한다고 맞서는 이들은 우선 경기회복세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산업생산같은 지표를 찬찬히 뜯어보면 거품이 끼어 있다며 섣부른 낙관을
경계하라고 주문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며 나름대로 귀를 기울여야 할 의견들이다.

하지만 큰 틀에 맞춰 놓고 본다면 한국경제의 기상도는 환란당시의 먹구름
이 상당부분 걷혀졌다.

나라가 거덜났다는 공포와 허탈감에 사로잡혔던 97년12월의 코리아는 1년여
만에 다시 외국 신용평가기관들로부터 잇달아 투자적격판정을 따내며 불명예
에서 벗어났다.

스템피드(stampede,소떼의 폭주)를 연상케 할만큼 무리를 지어 한국을
등졌던 외국자본들도 꼬리를 물고 돌아왔다.

대외적인 면에서는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이 지난해 3.9%의 경제성장
을 기록하며 대호황을 노래중이다.

회복기의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복병으로 꼽혔던 중국 위안화 절하문제
도 주룽지(주용기) 중국총리의 공개적 부인으로 불씨가 일단 꺼졌다.

내부로 눈길을 돌리면 기업들의 숨통을 조였던 금리가 IMF이전 수준으로
돌아가 있다.

98년 한때 300선 밑으로 곤두박질쳤던 주가지수는 570선을 넘어서 있다.

동토의 땅이라던 부동산시장에 프리미엄매물이 다시 등장하고 미분양아파트
가 줄고 있다.

소비측면에서도 에너지는 꿈틀거린다.

IMF체제가 시작된 후 사상최악의 불황에 빠졌던 백화점들의 매장에도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두둑한 경품이 고객들의 지갑을 열었는지는 몰라도 서울시내 7개 대형
백화점들의 지난해 12월 매출이 1년전에 비해 10% 이상씩 늘어난게 그
증거다.

서민가계의 돈 씀씀이와 맞닿아 있는 슈퍼마켓들의 매출도 완만하나마
상승커브로 돌아섰다.

장사가 안돼 걷어 치워야겠다며 한숨으로 날을 보내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얼굴에서도 최악의 고비는 지난 것 같다는 안도의 표정이 읽혀진다.

얼마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소비빙하기의 한국경제에도 봄은 오고
있음을 알리는 메시지들인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메시지 뒤에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들 모두가 무심코
넘겨버려선 안될 대목이 있다.

바로 소비의 내용과 처방이다.

얼어붙은 소비를 녹이기 시작한 최근의 온기는 너무 졸라매고 살았던데
대한 반발적 씀씀이일 수도 있다.

정부의 경제호전 전망에 설득돼 기대가 부푼 소비자들이 소비시점을 앞당긴
행태일 수도 있다.

주가와 부동산값이 반토막나면서 역자산효과의 고통을 겪은 투자자들이
주식, 부동산시장 회복으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자 일시적으로 지출을
늘렸을 수도 있다.

바꿔 말한다면 현재의 소비활동에는 봄을 알리는 희망적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이는 언제라도 다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물경기지표가 호전기미를 보인다고, 또 소비빙하기에도 봄기운이 전해져
온다고 맘을 놓아서는 안된다.

정부는 정부대로 경기부양에, 민간은 민간대로 건전소비회복에 더 공을
들여야 할 시점을 우리는 맞고 있는 것이다.

"십만량의 돈이 한사람의 집에만 모여 있다면 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십만량
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신종에게 화폐유통의 중요성을 건의한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 심괄의 말은
활발한 소비와 투자가 나라살림을 살찌우는 거름이라는 것을 이미 옛날에도
중시했음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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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