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의 화요일 아침.

갑자기 사무실의 정적이 깨진다.

"방송모니터회"의 정기모임이 시작된 것이다.

소란의 주인공은 회원 자녀들.

이제는 익숙해진 공간이어서 그런지 거리낌없이 사무실을 휘젓고 다닌다.

엄마가 사정이 있어 정기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는 날은 아이들이 먼저
"오늘은 경실련 왜 안가?"라고 물을 정도다.

아이들은 우리모임의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10여명 회원들이 매주 만날 때 하는 첫 업무(?)는 1주일동안 삶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수다 한마당"이다.

각자의 애환을 진지하게 듣고 적절하게 대응방안을 제시하는 역할은 최성주
회장의 몫.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최 회장은 신앙을 바탕으로 풀어온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

수다에 빠져있는 회원들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몫은 김태현 부회장의
역할이다.

회원들은 우선 1주일간의 모니터 결과를 기록한 노트를 꺼낸다.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지하게 토론이 진행된다.

요즘은 모니터 보고서 작성과 함께 작년부터 시작한 "미디어교육 시범학교"
운영도 주된 토론의 주제다.

청소년들에게 미디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운동이다.

그래서 강남의 한 중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에 미디어교육 시범학교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외부 지원을 얻기가 쉽지 않다.

재정문제와 교사양성 등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시원스런 해결방안을 찾을
수 없다.

그 많은 국민의 세금은 다 어디 쓰는지.. 우리모임은 96년2월 창립했다.

회원들은 "엄마" "아내"라는 이름이외에 "시민운동활동가"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영화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원영진씨, 화학과 박사학위 취득 후 대학의
시간강사로 일하게 될 황란씨, 또 98년 방송문화진흥회 비평상에 응모하여
가작을 수상했던 김현정씨, 통신에 관한 논문으로 신문방송학 석사과정을
마친 후 과감하게 시청자 운동을 택한 한상희씨.

이들을 "방송"이라는 하나의 끈으로 묶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어하는
일이기보다 해야 할 일"이라는 진지한 운동가로서의 자세다.

올해엔 좀 더 전문적인 모니터 보고서 발간과 미디어교육 실시 강화의 해로
채워 나갈 것이다.

정란아 < 경실련 방송모니터회 간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