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쓰는 경제학 <상> 주류경제학의 딜레마 ]

보름달처럼 만개했던 산업자본주의는 이제 이그러질 운명이다.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물질의 법칙들엔 용도폐기 경고장이 통지됐다.

20세기를 지배했던 경제원리들은 하나도 들어맞는게 없다.

생산과 소비 물가 시장 국제수지 고용-그 무엇하나 종래의 개념을 그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수리해서 될 일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으로의 환골탈태를 재촉하고 있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고 혼돈이 그 자체로 질서인 새 세계에 걸맞는
새로운 경제논리로의 개변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 왔던 패러다임이 어느순간부터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 기초로 했던 사회자체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의미다.

천동설이 지동설에 밀려 났듯이 물질경제학이 두뇌경제학에 자리를 내줄
시점이다.

신경제학의 태동이다.

<> 생산 =전통적인 생산은 "생산요소의 결합과 사용을 통해 새로운 재화를
획득하는 행위"로 규정돼 있다.

여기서 생산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이런 요소를 확보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생산비다.

지대 임금 이자 등이다.

생산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다.

여기에선 자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의 생산총량은 일정한 한계를
넘을 수 없다.

한가지를 많이 생산하면 다른 쪽의 생산은 줄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투입량을 같은 규모로 늘려도 생산량 증가분은 줄어드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기계의 능력과 자원조달, 인간의 손놀림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산성
증가도 일정 범위를 초과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논리들은 지식과 정보 산업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이 유일한 생산수단이자 주체다.

두뇌를 통한 창조는 생산요소의 유한성을 무시한다.

공장 따위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컴퓨터와 손가락으로 생산요소가 완비된다.

소프트웨어는 순식간에 복제돼 추가 생산비가 들지 않는다.

반도체 칩은 전체 가격중 물질의 비중이 1%도 안되기 때문에 아예 비용
개념을 적용할 근거가 없다.

투입량을 조금만 늘려도 생산은 엄청나게 확대되는 "수확체증의 법칙"이
들어 맞는다.

뇌본상품의 세상에는 소비자가 생산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최초 생산자가 인터넷에 상품을 띄워 놓으면 수요자들이 수시로 복제한다.

때문에 생산의 주체 조차도 구분이 안된다.

창조는 이윤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용의 극대화를 위해 이루어진다.

사용자가 많을 수록 가치가 커진다.

<> 물가 =가격은 생산(구입)원가에 마진을 더한 것이다.

상품의 경쟁력은 바로 가격으로 결정된다.

같은 시장에서 품질이 같은 상품엔 하나의 가격만 존재하게 돼있다.

품질이 높아지면 가격은 올라간다.

소비자들은 값이 싸면서도 질이 좋은 상품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인기를 끌면 물량이 달려 값이 올라가고 수요가 줄어든다.

그러면 공급을 늘려 값을 떨어뜨리고 다시 수요를 만들어 낸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이다.

야채가 아닌한 수요와 공급곡선이 부드럽게 연속적으로 움직이며 가격과
물량을 조절한다.

산업사회가 넘지 못했던 장벽은 무너지고 있다.

가격은 하루아침에 폭락할 수 있다.

정보제품은 지적가치의 비율이 워낙 높고 추가생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가격의 급전직하가 가능하다.

가격커브는 계단형이다.

노트북 컴퓨터의 기억용량과 처리속도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이동통신
서비스의 품질이 놀랄만큼 향상되지만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는게 그 사례다.

점포도 저장창고도 운송할 차량도 필요하지 않은 사이버 세계에선 원가
개념이 아예 배제된다.

상품간의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사실상 똑같은 제품은 찾아볼 수 없는 다양성의 세계여서 일물일가의
법칙도 한계에 봉착한다.

<> 시장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재화와 용역을 거래하는 장소다.

지역적 개념이기도 하고 추상적일 수도 있다.

종래의 시장에서는 대개 수요자와 공급자간에 완전한 정보교환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새로운 공급자가 참여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한번 만들어진 독과점은 정부의 개입 없이는 시정되기 어렵다.

유통 과정은 생산과 도매 소매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그래서 완전경쟁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정보화사회의 시장은 아예 시공개념을 없앤 시장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쇼핑센터다.

엄청난 수의 공급자들이 시시때때로 들어온다.

수요자는 생산자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품을 사고 판다.

한순간의 독점은 곧바로 새로운 버전으로 대체된다.

대금도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

이상적인 완전경쟁 시장이다.

<> 성장 =국민총생산(GNP)은 창출된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이를 인구수로 나눈게 1인당 국민총생산(국민소득)이다.

상품경제에선 경제성장률이 무한정으로 높아질 수 없다.

부가가치의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두자리수 이상을 지속하면 "기적"으로 불린다.

새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많더라도 인구가 더 많이 늘어나면 1인당 소득은
줄어든다.

총량이 한정돼 있어 한 부문의 수준을 높이려면 다른 부문의 상대적 위축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나 두뇌상품이 지배하는 경제에선 부가가치는 무한정이다.

마이크로 칩에서는 부가가가치가 99%이상이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상생 부등식(1+1>2)이 적용된다.

지식은 사용되면서 쌓이고 강화된다.

인구 수와도 무관하다.

<> 국제수지 =국가간에 이루어진 모든 경제적 거래의 집계다.

일반적으로 경상수지(상품수출입과 운임 보험료 등 무역외수지 및 이전수지
의 합계) 흑자를 내는게 건강한 경제다.

외국에 판 상품과 서비스가 산 것보다 많다는 뜻이다.

그래야 경제가 성장하고 고용을 늘릴 수 있다.

환율 안정도 기할 수 있다.

한국이 환란을 겪은 것도 바로 경상수지 적자 확대에서 시발됐다.

하지만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를 내는 미국은 인플레이션 없는 최장기간 성장
이라는 "신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무역흑자와 외환보유고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일본은 위기의 문턱에서
휘청대고 있다.

수출로 이웃을 궁핍화시킨다는 비난만 받고 있다.

각 나라들은 자국의 흑자에 연연하지 않고 수평적 통합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 투자 =공장이나 기계 건물들을 늘리는 행위다.

쓰건 안쓰건 저절로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감가상각을 적용한다.

투자는 자본의 한계효율(예상수익률)과 이자율을 비교해 결정한다.

투자를 늘리면 연쇄적으로 소비와 소득이 늘어난다는게 케인즈의 "승수효과"
다.

그러나 정보.지식산업의 투자는 이자율을 따지는 차원이 아니다.

감가상각도 적용되지 않는다.

투자를 늘린다고 소비가 늘어나는게 아니다.

오히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켸묵은 "세이(Say)의 법칙"이 더 잘
어울린다.

고전적 의미로 치더라도 치열한 국제경쟁과 생산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국가들의 분별없는 케인지안적 투자는 파멸로 귀결됐다.

<> 고용.실업 =인간의 노동력을 재화와 서비스 생산에 투입하는 행위가
고용이다.

소득을 목적으로 일정 시간이상(조사 주간 기준)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
된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출퇴근하며 월급을 받는게 전형적인 피고용자의
형태다.

하지만 이미 직장의 개념은 달라지고 있다.

출퇴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재택근무자의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중이다.

이른바 원격 근무다.

필요할 때만 일하는 사람이 늘어 일률적으로 취업자 여부를 가리기도
어렵다.

노동의 유연성은 종래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다.

평생고용이라는 단어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누군가 농사를 짓고 집을 수리하고 자동차를 만들겠지만 정형화된 근로자의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 도움말 주신분 : 윤주환 < 패러다임 전환 국민교육센터 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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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반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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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 패러다임 변화 ]

<> 생산요소
-주류경제학 : 토지.노동.자본(자원의 유한성)
-신경제 : 정보.지식(자원 무한성)

<> 생산함수
-주류경제학 : 수확체감
-신경제 : 수확체증

<> 생산동기
-주류경제학 : 이윤극대화
-신경제 : 사용극대화

<> 가격
-주류경제학 : 상방지향
-신경제 : 하방지향

<> 경쟁체제
-주류경제학 : 불완전 경쟁(진입제한.정보부족.간접거래)
-신경제 : 완전 경쟁(개방시장.정보공개.직거래)

<> 잠재성장률
-주류경제학 : 제한적(부가가치 한정)
-신경제 : 무제한(부가가치 무한)

<> 자본의 한계효율
-주류경제학 : 체감
-신경제 : 체증

<> 고용
-주류경제학 : 물가와 정의 상관관계
-신경제 : 물가와 무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