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서에서 혼돈으로 ]

새로운 세계는 혼돈(chaos)의 세계다.

다양성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일관되게 흐르는 규칙도 보이지 않는다.

무질서하기 짝이없고 확정적인 미래도 없다.

예측불능의 복잡계(complexity)다.

천지창조 때와 같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막 태동하는 어수선한 세상이다.

산업사회는 그렇지 않았다.

만물은 선형적(linear)으로 움직였다.

위치와 운동속도를 알면 미래의 위상을 미리 알 수 있었다.

초기조건에 의해 결과가 정해졌다.

일관된 흐름이 있어 입력과 출력이 비례했다.

바로 "뉴튼역학"이 지배하는 결정론과 인과론의 세계였다.

세기말에 등장한 새로운 혼돈의 패러다임은 이같은 산업사회의 "법칙"들을
모조리 폐기시키고 있다.

모든 사물이 비선형적(nonlinear)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정형화가 불가능
하다.

입력과 출력은 번번히 어긋난다.

그래서 예측도 의미가 없어졌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도 상대적인 것이 돼버렸다.

뉴턴역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상이다.

그 자리는 "상대성원리"와 전자의 이중성(입자이면서 파동)과 불확정성
이라는 "양자역학"으로 대체됐다.

세상을 질서에서 혼돈으로 몰아가는 힘은 두뇌혁명이다.

물질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산업사회의 규칙을 적용할 수가 없다.

예측불가능의 세계에 "법칙"은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제한"을 거부한다.

자연과 자본을 "개선"하는 차원이 아니어서 종래의 경제논리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현대경제이론의 대전제인 "수확체감, 상품의 고정화, 균형, 합리적 행동"은
더이상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

요소투입 증가율보다 생산증가가 엄청나게 많은 "수확체증" 현상이 더
보편적이다.

상품과 기술은 서로 결합하며 스스로 변모한다.

한곳으로 수렴하려는 균형현상도 발견할 수 없다.

경제주체들이 최적화를 목표로 합리적으로 선택한다는 가설은 "한정합리"로
대체됐다.

지식과 정보에 "수요-공급의 법칙"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은 더 떨어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손"도 새 배역을
찾아야 하게 됐다.

무한창조가 가능한 시장이어서 "자원의 희소성과 유한성"도 전제조건이
안된다.

가치관도 혼돈 그 자체다.

20세기를 관통했던 냉전이 끝난 자리엔 종교와 인종을 내세운 분란과
이념부재가 얽히고 설켜 더욱 복잡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회자하는 조류가 언제까지 설득력을 지닐지 알수가 없다.

뉴 트랜드는 많지만 이를 하나로 엮어주는 매거 트랜드는 없다.

컴퓨터와 사상,과학과 종교가 서로 뒤섞이며 개념의 장벽을 허물어 가고
있다.

멀리 갈것 없이 주변의 삶 자체가 온통 혼돈 덩어리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뒤섞이고 잘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종류의 음악이
동시에 유행한다.

TV채널이 수십개로 늘어난 것을 "다양성"이란 포장으로 간단히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남녀 의 구분은 진작에 사라졌다.

슈퍼마킷에서 은행일을 보고 약국에서 편지를 부친다.

수백년동안 두개이던 남성정장 웃도리의 단추는 다섯개까지 늘었다.

머리색도 제맘 대로다.

다중선택(multi-option) 시대로의 진입이다.

획일적 양자택일과 흑백논리는 거부당한다.

영역구분이 없어지는 무경계(cross-over)의 세상이다.

그렇다면 카오스 시대의 생존법칙은 무엇인가.

역설적으로 그 해답은 바로 카오스현상에서 찾아진다.

"혼돈"과 "카오스"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같을지 모르지만 "카오스 이론
(chaos theory)"은 무질서 속에서의 질서를 규명하는 논리다.

계곡의 물, 부서지는 파도, 흘러가는 구름이 제멋대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재한 규칙이 있다는 개념이다.

그 안에는 자연의 유사성이 있고 결국엔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무작위의 파괴가 아니라 창조적 변화라는 말이다.

비단 물리학만의 얘기가 아니다.

국제경제의 움직임도 카오스 모델 대로다.

작년 7월 아시아 남쪽 태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가 인도네시아, 한국,
러시아, 브라질로 번졌다.

한 무책임한 관료는 "위기가 벼락처럼 왔다가 럭비공 처럼 튀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환란을 치르면서 그것은 무작위의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 농근이 기업에 있든,정부에 있든 공통적인 취약점을 안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파괴의 종착역은 금융시스템과 경제기반 강화라는 새로운 창조로
매듭지어지고 있다.

파괴를 통한 창조적 균형의 모색.

이것이 바로 카오스 이론의 본질이다.

비선형 소자들의 불규칙한 변화와 결합을 파악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뉴욕 학술원 이사인 하인스 페이겔스는 "무질서와 불확실성을 극복해내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어내는 나라가 다음 세기의 초강국이 될 것"이라고 단언
한다.

[ 특별취재팀 : 정만호(국제부장.팀장) 육동인(사회2부) 임혁(국제부)
이의철(정치부) 조주현(국제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