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국경을 가르고 경제권역을 나누는 연결 부위들 곳곳에서 총성이 울리고
있다.

작년말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시작된 미국과 EU의 "바나나 분쟁"은 시간이
갈수록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중국에도 시장을 더 열지 않을 경우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은 한국등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도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개도국들간에도 전운이 감돈다.

각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작년이 금융위기의 해였다면 올해는 무역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그러나 확실한 전망들이 제기된다.

무역분쟁의 중심은 역시 미국이다.

2천4백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98년 무역적자는 미국을 점차 성난
엉클 샘으로 만들어 갈 것이 확실하다.

지난 수년간 무역문제에서 비교적 소극적 입장을 유지해온 미국이었지만
올해 예상되는 경제적 난점들은 당국자들로 하여금 무역분야에서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미국은 EU 일본은 물론 중국 한국 등과도 치열한 일전을 벼르고 있다.

특히 EU와의 싸움은 심각한 상태다.

거의 전업종에 걸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다가 양 대륙의 자존심 대결까지 가세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비화되는 상황이다.

최초의 전투는 바나나때문에 시작됐다.

영국 프랑스등의 옛 식민지국가에 대해 EU가 낮은 특혜관세를 적용해
미국산 바나나의 수출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조치를 선언했다.

오는 2월부터 EU산 와인 가전제품 치즈 등 14개 품목에 대해 1백%의 수입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또 보리등 농산물과 철강제품에 대한 수출보조금도 철폐하고 금융과 서비스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유럽은 미국의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리언 브리튼 EU무역집행위원은 미국을 "악당 무역국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EU는 이번 기회에 미국과 한판 붙자는 입장이다.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통상법 301조에 대해서도 WTO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얘기다.

EU와의 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면 잠재적 뇌관은 일본과 중국이다.

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는 지난해 각각 6백억달러와 7백억달러에
달했다.

데이비드 아론 미국 상무차관은 최근 일본과 중국을 직접 거명하며 양국이
시장을 개방하지 않을 경우 "심각한 무역전쟁"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무역분쟁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각국이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보호무역주의적 정책을
노골화하고 있어서다.

미국 상무부는 한국등 3개국의 스테인리스강 제품에 대해 상계관세 예비
판정을 내렸다.

EU도 한국 등 8개 나라 열연코일 제품에 대해 반덤핑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발도상국들도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는 추세다.

작년 11월 열린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서 태국 등 개도국 등의
반대로 역내 무역자유화가 유보된게 이를 반증한다.

브라질도 작년 10월부터 아시아산 저가제품 수입규제를 위한 5가지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무역전쟁이 지속될 경우 국제교역이 크게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이는 세계경제의 회복이 늦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 세계적인 상품 교역량은 5조6천억달러로 신장률이 예년의 절반수준인
4%에 머물렀다.

올해 신장률도 잘해야 4-5%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노골적인 보호무역 또는 무역분쟁을 벌여 나가면서 자칫
2차대전 이전의 심각한 분쟁적 양상을 보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경고하고
있다.

무역분쟁의 또다른 측면은 우려되는 엔고 상황이다.

미국은 일본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달러약세를
유도하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시세는 2배 이상 폭등했던 적이 있다.

올해 엔고가 재현된다면 달러당 1백엔까지도 가능하다는 견해들도 유력하게
제기된다.

가뜩이나 위축된 한국경제가 올해 무역분쟁이라는 엄청난 장애물을 또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들이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