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가 시작된 이래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되려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한결같다.

"상식과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 새삼 대명제로 등장한 것은 둘 다 너무 자주 무시되는
까닭이다.

전화예절도 그가운데 하나다.

여직원이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부장 바꿔"하는가 하면 "어디라고
전할까요"엔 "여의돈데"나 "국횐데"가 다반사다.

"홍길동씨 계세요"에 "없는데요, 탁"도 흔하다.

기다리라는 말 한마디 없이 찾는 사람에게 수화기만 툭 건네기도 한다.

이런 통화 뒤의 불쾌하고 찜찜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근래엔 한가지 더 보태졌다.

버스 지하철 공연장 도서관 병원 강의실 할것 없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삐리릭"소리는 공해다.

문상 도중 "닐니리야 닐니리"를 녹음해둔 휴대폰이 울렸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거니와 세미나 시작전 "휴대폰을 꺼달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다.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공중전화 박스안에서 휴대폰을 사용한다.

2000년엔 무선전화가 유선전화를 앞지를 것이라고 하거니와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통화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주변사람이 얼굴을 찡그리는데도 미안해 하기는 커녕
들으란 듯이 더 크게 떠드는 건 3등국민이라고 광고하는 것같다.

병원 도서관 등에선 통화를 못하게 하는 전파블록장치를 설치하자는 얘기도
있지만 전화예절 한가지를 못지켜 법적인 규제나 강제장치가 만들어지도록
한다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교통질서나 전화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익명성때문이다.

자기가 누군지 다른사람들이 안다고 하면 그처럼 함부로 행동하진 못할
것이다.

신세대의 과다한 휴대폰 사용은 존재감이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데서
나온 공허한 제스처나 허사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상식을 어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내것 내맘대로 쓰는데 웬 참견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존 스튜어트
밀은 오래전 이렇게 말했다.

"자유의 범위는 다른사람의 이익과 권리를 해치지 않는 데까지"라고.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