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유치원생에게 IMF(국제통화기금)를 미술 숙제로 내주면 상당수는
"뿔 달린 도깨비"로 그릴 것이다.

아버지 사업을 망하게 하고 대학을 갓 졸업한 형이나 누나를 실업자로
만든 원흉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같은 감정은 성인이라고 해서 별로 다르지 않다.

대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가별로 국민이 겪는 고통을 지표화한 고통지수
(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합친 뒤 소득증가율을 뺀 수치)는 97년 1.5에서
98년 20.9로 급상승했다.

OECD 24개 회원국중 최악이다.

대다수 국민은 IMF체제 조기종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고실업 고물가 고환율의 3고시대와 저성장
저소득 저임대료의 3저시대가 개막됐다.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구조조정 폭풍속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도 땅에 떨어졌다.

살아남은 기업마다 경쟁지상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연봉제를 앞다퉈 도입
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경쟁자로 돌변했다.

"우리"란 공동체의식은 붕괴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말 대졸공채 합격자를 선발한 뒤 지난 10월 입사명령을
냈는데도 모든 합격자가 근무의사를 밝혀올 정도로 취업난은 심각하다.

실질소득이 1년새 30%이상 격감하면서 근검절약의 기풍이 되살아났다.

과소비의 거품도 상당부분 사라졌다.

지갑에 여러장 있던 신용카드는 가위질당했다.

두툼한 경조사비는 옛말.

더치페이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시부모에게 얹혀사는 역분가도 등장하고 있다.

쿠폰으로 생필품을 사는 쿠폰족과 출산을 기피하는 싱크(SINK.Single
Income No Kids)족도 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천2백~1천3백원대로 오르면서 해외관광이 시들해졌다.

투명성과 공정성을 금과옥조로 삼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사회규범으로
자리잡으면서 촌지 급행료 떡값 등 부패고리도 차츰 끊어지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면서 사회갈등이 표면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중산층은 몰락하고 생활보호대상자와 노숙자는 계속 늘고 있다.

버려지는 아동이 증가하고 이혼율은 높아지면서 사회안전판이 흔들리고
있다.

이같은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 IMF체제는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한국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고비용-저효율" 체제가 상당부분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면서 대학명이나 브랜드등 간판보다는 전공과
자격증을 중시하는 실속주의가 확산된다는 것도 다른 이유다.

< 최승욱 기자 swchoi@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