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문화회관은 1978년 4월 문을 열었다.

61년 개관된 시민회관이 72년말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건립됐다.

설계는 엄덕문건축연구소에서 맡았다.

세종문화회관이란 이름은 당시 예술원 회장이던 박종화씨의 건의에 따른
것으로 전해진다.

3천8백95석짜리 대강당엔 독일 슈케사에서 제작한 초대형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교향악단과 국악관현악단 무용단 합창단 오페라단 극단 등 9개 산하단체를
두고 있으며, 소속인원도 관리직과 예술단원 등 5백여명에 이른다.

예술의전당 음악당과 오페라극장이 생기기 전까지 세종문화회관은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공연장이었다.

카라얀의 베를린필과 주빈 메타의 뉴욕필 연주, 88서울올림픽 기념오페라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그러나 1백% 세금으로 운영되는 세종문화회관이 시민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대로 해왔는지는 의심스럽다.

97년 지출 1백64억원 수입 29억원이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경영성적 또한
형편없다.

지난해 산하단체 정기공연때 유료관객 좌석점유율은 31%로 예술의전당과
정동극장의 기획공연 유료관객비율 47% 72%보다 턱없이 낮다.

무사안일과 마케팅 부재로 만년적자에 허덕이던 세종문화회관이 내놓은
운영개선안은 획기적이다.

대관입찰제를 실시, 지금껏 고집해온 순수예술 위주 공연에서 벗어나 대중
예술을 수용하고 영화상영도 허용해 대관료 수입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세종문화회관은 그동안 국내가수들의 공연을 제한, 원망을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앤디 윌리엄스를 비롯한 외국가수들에겐 무대를 내줘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95년 운영요원 한명 없이 출발한 정동극장의 홀로서기 사례는 문화기관도
얼마든지 독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종문화회관은 시민을 위한 공간이다.

세금으로 운영하면서 수익성에만 지나치게 연연하는 것도 문제겠지만 특정
장르를 제한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이다.

세종문화회관 운영정상화는 관계자 모두 자신들이 왜 있는지, 계속 존재하
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달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