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특히 "제3의 길"이라 할 수 있는 DJ노믹스와 아시아적 가치의 관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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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립 필요하다 ]

아시아 금융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아시아를 금융위기에 몰아넣은 주범으로 아시아의
부패한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지목했다.

IMF가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미국적 가치인 "글로벌 스탠더드(세계표준)"
에 따라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을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아시아적 가치의 병폐에서 비롯됐다는 자괴섞인 자성론마저
나오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적 가치는 신기루였나.

국민의 정부 경제 청사진이라 할 수 있는 DJ노믹스는 아시아적 가치의
실체를 완전히 매도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부작용의 폐해도 인정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만들수 있다고
주장한다.

DJ노믹스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으로 요약된다.

역사적으로 볼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동시에 발달시킨 나라는 선진국이
됐다.

반면 소수 엘리트의 판단과 결정에 의존하는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결국
관치경제를 낳았다.

이는 특혜와 비리로 점철된 경제체제로 이어졌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자유 경쟁 책임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또 양자간엔 상승효과가 있어 어느 한쪽이 발달하면 다른 한쪽도 자연스럽게
발전하게 된다고 DJ노믹스는 강조한다.

한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란 경제철학 기조위에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게 DJ노믹스의 골자다.

DJ노믹스는 기존 정부주도의 성장방식이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분석한다.

경제위기의 원인은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는 희생할 수 있다는 과거
정권의 그릇된 사고 탓이라고 규정한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은 결과 정부는 경제 전반에 대해 자의적으로
간섭하게 됐다고 진단한다.

또 기업과 은행은 정부에 의지,자기 이익을 관철함으로써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가 파괴됐고 결국 오늘날의 위기가 초래됐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DJ노믹스가 과거의 전면적인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시아적 가치의 토양 위에 서 있다.

DJ노믹스는 "아시아에도 고유한 민주적 전통은 있다"고 못박고 있다.

민주주의는 서양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다.

2천년전 중국의 맹자가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지
않을 때 백성은 하늘을 대신해 천자를 몰아낼 권리가 있다"고 설파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민주주의 원리인 주권재민 원칙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과 사상은 우리나라 동학의 인내천 사상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DJ노믹스가 21세기 국가상으로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한 복지사회"를
주창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DJ노믹스는 유교적 교육열과 공동체 정신으로 허리띠를 졸라맬 수 있었던
한국적 가치가 원조경제 체제에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해 보이지 않는 버블을
키워 왔고 동시에 금융시스템 낙후, 정경유착, 과소비, 고비용.저효율 등의
사생아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DJ노믹스는 아시아적 가치의 본질 위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소화해 나갈
것을 천명한다.

한국을 글로벌 스탠더드가 가장 잘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고
강조한다.

"세계와 같이 하는 투명하고 열린 경제"를 만들자는게 DJ노믹스의 또 다른
모토다.

이를위해 한국경제를 개방경제 체제로 시급히 바꿔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 개방경제 안에서 무한경쟁을 촉진, 부정부패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배양했던 기존 토양을 바꿔 나갈 것을 주장한다.

DJ노믹스는 한국적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한국경제의 생존 패러다임이다.

아시아적 가치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접목, 새로운 한국형 경제시스템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어 가겠다는게 DJ노믹스의 야심찬 의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