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오후의 볕속을 걷는다.

길가 라디오에서 무심히 흘러나온-고은 시인이 가사를 쓴 "가을 편지"를
듣는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하고 시작되는 이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한층
가라앉힌다.

그러면서도 능동적이고 강렬하다.

이 무렵 길가 작은 풀잎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는 낙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 가을은 유난히 짧았다.

오색 단풍을 보기도 전에 벌써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본다.

가을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다.

호흡을 멎게 하는듯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서는 누구라도 그대가되어
편지를 받아달라는 시인의 노랫말.

그 노랫말과 함께 가을은 끝나가고 있다.

그렇게 제 몸빛 하나로 앞다투어 꽃피우던 꽃나무와 잎과 열매들이 반드시
피어 있을 때에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다 끝나가는데도 아파트 화단이나 길가에선 철없이 화색을 드러내며
피어있는 철쭉들을 볼 수 있다.

불쑥 봄꽃이 얼굴을 내밀 때 아름답다고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철을 잊고 피어있는 꽃들을 보면 어딘가 뒤틀린 기상이변이나 재앙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어느 순간 우리는 새삼 지나가 버린 시간이 얼마나 재빠르고 아쉬운가를
깨닫게 된다.

아쉽고 그리운 것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리고 떨어져 발에 밟히는 일그러진 낙엽을 조락의 의미만이 아닌 생의
환희로 전환시키려 애쓴다.

낙엽 위에 떠도는 마음만이 저 혼자 깨어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하고 나는
작고 작은 존재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한철, 져야 할 때 진다면 가야할 때를 정확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처럼 당당하다.

미국의 노정객이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파안대소하는 얼굴이 이 가을에 유난히 인상적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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