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민간경제연구소가 지난 28일 내놓은 "최근 경제현안과 대책"이란 공동
보고서는 새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적 내용도 관심거리지만 민간연구소
들이 사상처음으로 공동연구란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는데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보고서를 두고 정부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압력을 누그러뜨리
기 위해 산하연구소들을 동원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보고서가 거시경제운용과 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공공 노동 중소기업
부문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정부 출범이후 8개월여간 추진되어온
이른바 "DJ노믹스"에 대한 민간기업계의 시각을 집약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은 기업부채비율 축소와 상호지급보증 해소 정책의 추진일정
재조정 등 대부분 지금까지 재계가 요구해온 사항들을 일괄 정리한 것이고
일부 지적사항들은 이미 정부가 정책에 반영키로 검토중인 것이어서 크게
새로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보고서의 내용보다도 민간
연구소들의 공동목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과 그것을 보는 정책당국의 시각에
더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정부가 국가경제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관변연구기관
들의 연구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감이 없지 않다. 그 결과 민간연구소들의
연구성과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되게 마련이었다. 국내에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연구기관은 없고 "맞춤연구"와 "OEM연구"만 있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돌게된 것도 이 때문이다.

민간연구소가 신뢰할만한 연구성과와 정책대안을 내놓아도 그것이 정책
당국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거들떠보기조차 꺼린다. 관료들의 독단과 부처
이기주의, 조직의 폐쇄성 등이 민간 이코노미스트들의 사기를 원천적으로
꺾어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변연구소의 경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새바람이 일고 있는 마당에 민간연구계의 역할은 물론
민간연구계를 보는 시각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 민간주도의 민주시장경제
를 지향한다면서 민간경제연구소들의 연구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관변연구소가 태생적으로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면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민간연구소들의 몫이다.

정부 역시 민간연구소를 개별기업이나 재계의 손발 쯤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번 6개 민간경제연구소의 공동보고서가
설령 정부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하더라도 감정을 앞세워 대응할 일이 아니라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하며 건설적인 건의사항은 진지하게 검토, 수용하
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연구성과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독선과
관료주의로는 민주시장경제를 창달할 수 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