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원칙에 "비례의 원칙"이란 것이 있다.

행정이 추구하는 공익과 그로 인해 침해받는 사익은 적절한 비례형평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민선이전 여러곳의 시장 군수를 거치면서 종종 사익과 공익을
비교형량해야 하는 어려운 경우를 접하곤 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중소기업인이 농지에 공장을 짓고자 형질변경과 농지전용 등 공장
설립에 필요한 제반허가를 어렵사리 받아냈으나 그만 측량을 잘못해 허가받은
법선을 넘어 건축하는 실수를 하게 되었다.

당시 담당부서는 명백한 위법이므로 공장을 헐어서라도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위법부분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익을 현저히 저해하는
것이 아닌데도 굳이 민원인에게 경제적 피해를 안겨주면서까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보다 추인해주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담당부서를 설득해 허가를 해주었다.

사회현상이 워낙 다양 복잡하고 급변하다 보니 세세한 내용까지 법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개략적인 내용만 정하고 구체적인 법적 판단은 행정의 몫으로
돌리는 게 일반적인 입법형식이 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행정의 재량이 나날이 커지고 있고
행정담당자의 판단이 법령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실제 구체적인 사안에 접하게 되면 법을 해석해 공익과 사익을
비교형량하고 명쾌하게 결정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행정담당자들은 법에 명백한 규정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회피자세를 갖게되고 해줄 수 없는 변명을 먼저 찾게되는
것같다.

최근 우리 행정에 구조조정의 커다란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의 모습은 조직을 정비하고 인력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국민을 대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공직자세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안되는 이유보다는 되는 이유를 찾고
경직적으로 법을 적용하기보다는 법의 이념이나 취지도 따져보는, 그래서
주민편익이 최우선의 행정기준이 되는 그런 행정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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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