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 < SK텔레콤 사장 juseo@sktelecom.com >

지난 79년 총리가 된 마거릿 대처는 취임사에서 "이제 사회주의와 인연을
끊자"고 했다.

사회주의에 물들어 가던 당시의 영국에서 보수정치가도 정면 대결하기를
두려워하던 시대에 대처는 자기의 적은 사회주의라고 용감하게 천명했다.

민주주의도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나 금융산업의 개혁과 같은 사안의 긴급성을 생각한다면
민주주의 프로세스의 의사결정은 번잡하고 지루하여 기회를 상실하기 쉽다.

민주주의의 이점은 합의(Consensus)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점이라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도 "민주주의는 최악의 시스템이다.

그러나 다른 시스템은 더 나쁘다"고 했다.

이것은 민주주의에도 취약점이 있고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대처 정권이 출범했을 때 영국은 심한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었으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과잉
복지로 인해 사상 최악의 재정적자를 기록했었다.

근로자의 연중 파업으로 경제는 파탄 일로에 있었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정부에만 의존하려는 영국 국민을 대처 총리는 쇼크요법
으로 눈을 뜨게 하고 자립정신의 환골탈태를 시키려 했다.

당시의 영국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체념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대처 총리는 "이러한 체념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회의 평등은 보장돼야 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필요 이상 추구하면 안된다"
고 역설했다.

"가진자"를 편든다는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대처 총리는 "노력과 재능으로
성공한 사람이야말로 사회를 견인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한 사람을 소득이 높다고 해서 악덕처럼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대처 총리는 그릇된 평등주의를 타파하지 않는 한 영국의 경제는 영구히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개인소득 세율을 최고 83%, 최저 33%에서
각각 40%, 25%로 인하했다.

야당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대처 총리는 관철했다.

모든 것이 평준화돼 악평등의 표본이 돼가는 영국에 새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대처 총리는 또한 오늘날 세계 조류가 돼있는 규제완화를 주창하고 실천한
선견지명의 정치가였다.

자유주의와 시장원리를 신봉하던 대처 총리는 전신전화 가스 항공 등의
산업분야에서 20개에 가까운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기업간의 경쟁을 촉진
했다.

법인세도 대폭 인하하고 벤처기업을 장려했다.

그리고 노동법을 개정해 부당한 파업을 철저히 봉쇄했다.

이 결과 IMF체제에서 막 헤어난 영국의 경제가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지난 86년에 대처 총리 정권하의 영국에는 금융산업의 빅뱅(Big Bang)이
일어났다.

수수료 자유화 등의 개혁을 추진해 뉴욕의 월 스트리트(Wall Street)와
함께 세계금융시장과 경제를 이끄는 런던의 시티(City)는 87년 주식 거래
액이 전년의 2배, 그후 10년이 지나 다시 2배로 성장했다.

우리의 공기업 민영화 및 금융산업개혁도 목적과 원칙이 분명하면 여론에
과민할 필요없이 굳은 신념으로 추진하면 국민의 신뢰를 받아 성공할 수
있다.

특히 금융산업개혁은 그 지주가 되는 회계와 금융을 분리해야 하며 정부는
감시기능만 발휘하면 된다.

미국에는 금융감독 검사관 7천9백명과 증권거래위원회(SEC)요원만도 2천7백
명이 활동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은행에도 민간기업의 사장과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장이라는 직분은 자나 깨나 자기 회사의 생존을 위해 걱정하고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우리 은행은 오랜 세월을 두고 관치금융에 순치돼서인지 자기책임원칙이라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은행은 자기책임과 공개(Disclosure)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대처 총리가 철의 여인으로 불려진 까닭은 아무리 격렬한 반발에 처해도
결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데 있다.

타협을 미덕으로 보는 영국 정치의 전통 속에서 대처 총리는 "나는 합의를
추구하는 정치가는 아니다. 나는 신념(Conviction)의 정치가"라고 말했다.

경제정의는 공정한 조세와 투명한 금융이 바탕이 된다.

한국에도 철의 신념을 갖는 정치가의 리더십이 경제를 재구축할 수 있는
국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