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선생은 신라시대의 학자다.

경주 최씨의 시조가 된다.

호는 고운 혹은 해운이다.

13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과거에 급제했으며 황소의 난 때 토황소격문을
써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귀국한 뒤 벼슬을 지내다가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글씨를 잘 썼으며 난랑비서문은 신라시대 화랑도를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저서에 계원필경이 유명하다.

천재로 불리는 설총, 강수와 함께 신라 삼현의 한 분으로 자리매김된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우리 역사에서 선생의 발자취는 난랑비문과 천부경을 통해 빛이 난다.

난랑비의 글을 통해 우리의 자생 사상으로서 "풍류"에 관한 언급을 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풍류"를 일컬어 현묘한 도라 하여 유.불.도 3교사상의 원류로
해석한다.

신라의 화랑도를 바로 풍류도라 하기도 하고 그 사상을 일러 풍류사상이라
하기도 한다.

이 사상은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지성적으로는 선비정신을 낳게 했고
예술 문화적으로는 여백으로의 한국미를 창조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우리 한국인의 삶과 멋의 원류를 형성하는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다.

일시무시일로 시작하는 천부경은 우리 민족이 태동된 신시 시기부터 특이한
문자형태로 전해오던 것을 선생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고 한다.

어지간한 암호문을 다 해독하는 미항공우주국(NASA)의 암호해독반도
이 천부경만큼은 손을 들고 말았다는 얘기가 있다.

대우주와 자연만물의 생성원리 및 인간 궁극의 문제를 설파하고 있다.

곧 천지인 삼재의 원리를 숫자를 이용하여 고도의 암호적 기법으로 전해준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삼태극 문양은 천부경의 하나에서 셋(하늘과 땅과 사람)이
나오는 일생삼법에 기초하고 있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