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 한국경제연구원장 shj@keri.org >

최근 5대그룹을 비롯한 재계의 소위 "빅딜"로 불리는 사업구조조정안이
3개월만에 업계의 자율적 합의에 의해 마련되었다.

과잉 중복시설및 투자의 해소, 경제력 집중완화, 소유와 경영의 분리,
과당경쟁의 해소라는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향후에도 이런 자율적 사업구조
조정이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재계의 이런 사업구조조정안에 대해 정부는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구조조정을 기업의 자체결정에 맡겨둘 수 없다는
판단하에 은행을 통해 몇개 업종은 워크아웃 프로그램 하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80년대에 경험한 바와 같은 정부개입에 의한 사업구조조정의
부작용에 비추어 볼 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재계의 사업구조조정안은 M&A의 현실적 제약과 사업정리에 따른 고용불안
등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고, 업종별 특성에 따라 다양한 구조조정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 등 재계로서는 시간적 제약 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또한 21세기 개방경제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구조조정 대상사업의
경쟁력강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사한 사업구조조정이 지속적으로 추진된다면 기존
사업구조가 핵심역량위주의 사업구조로 개편될 것이며, 아울러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기업매매시장의 활성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업구조조정은 사실상 기업의 사활이 걸린 생존 문제로 정부보다도
기업이 그 필요성을 보다 더 절실히 느끼고 추진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어렵게 마련한 사업구조조정 계획이 성공적으로 달성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재계의 협력이 절대 필요하다.

기업은 사업구조조정의 추진과정에서 과잉설비및 투자 조정, 고용 조정,
재무구조 개선, 부동산 매각 등 자구계획과 감자를 통한 이해당사자의
손실부담 계획 등을 조속하게 마련하고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협조 또한 불가피하다.

사실 "빅딜"아이디어가 처음 거론될때에는 정부개입과 압력에 의한
구조조정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반대와 불협화음도 많았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는 재계는 물론 정부 모두가 대내외에 약속한
우리나라 구조조정의 핵심사안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순리이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경제의
대외신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업구조조정은 이제 시작단계이고 그 성공여부는 앞으로의 지속적
추진여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번에 마련된 안만을 가지고 성패를 미리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 내용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직접 개입하겠다고 하는 것도 과거나 다름없는 관치금융과 명령경제적
사고에 다름아니다.

또한 정부가 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워크아웃도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으며 실현 가능하다 해도 사업구조조정의 성공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를
보다 신중히 생각해야 한다.

이제 겨우 "자율"의 관행이 정착되는 시점에서 다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마도 정부는 퇴출제도를 제대로 정비해 놓고 기업들이 보다 자유롭게
원하는 기업을 퇴출시킬 수 있도록 하되 시장및 산업에 대한 각종
진입규제를 철폐하고 시장개방을 확대하며, 은행이나 주주들에 의한
기업감시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을 강화하는
일 외에 더 적극적으로 할 일은 없어 보인다.

이와 같이 직접명령보다도 간접적으로 경쟁압력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발전에도 부합된다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