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보면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 대외정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의사당이 멀리 바라보이는 백악관 앞을 지나 언제나 관광객이 붐비는 공원
몰(Mall)로 들어서면 그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링컨 기념관에 서서
왼편으로 월남전 기념물과 오른편으로 한국전 기념물이 대칭적으로 배치돼
있다.

하나는 20세기 미국 대외 정책의 참담한 실패를 참회하는 어두운 기념물이
요, 다른 하나는 미국이 주창한 자유를 지킨 자랑스러운 상징물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전 참전기념 조각이다.

미국이 세계를 향해 부르짖어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가장 모범적으로
달성한 나라, 그것도 미국이 정치 군사 경제면에서 적극 개입해 이룩한 혁혁
한 성과라는 점에서 지난 반세기 한국의 역사 발전은 곧 미국의 자랑이 된다.

이와같은 결론의 이론적 배경에는 미국 사회과학계의 주류가 그 맥의 계승
쪽 보다는 당연히 보편주의 수용쪽에 서서 한국의 발전을 이해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지난 2일 위싱턴의 유서깊은 조지타운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자로 나선 수정주의 역사학자로 알려진 시카고대학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이른바 근대화 발전론을 한국의 역사발전을 이해하는데 그대로 적용
해서는 안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연한 지적이다.

어느 사회, 어느 나라든 그 문화 전통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보편적
가치관을 수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동안 한국은 경제개발을 통해 시장경제에 접근하는 한국 모델을 만들어
보였다.

또 정치적으로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에 맞서 민주화 과정을 겪어오면서
보편적 민주주의 가치관을 수용하는데도 성공하고 있다.

그와 같은 한국의 성공 사례는 당연히 커밍스가 지적한 지난날 역사 경험을
통해 축적된 우리의 민간 역량(Civil Society)을 무시하곤 그 원인이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주도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이제 서구적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한 특수한 하나의 문화 현상에 머물지 않고 모든 문화적 국경을 넘
어 보편적 가치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지난 89년 베를린 장벽에 따른 미국의 냉전 승리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나타난 아시아적 가치관의 몰락은 20세기 초 드 토크비유의 예언대로
세계는 미국 평화체제(Pax Americana)로 굳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결국 분단된 한반도야 말로 미국 평화체제의 완성을 지연시키는
마지막 숙제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지난 반세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관
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을 헤쳐왔다.

정치적으로는 7명의 대통령이 불행하게 퇴장해야만했고 경제 사회적으로는
많은 국민이 때로는 인권을 유보당하면서 오랫동안 내핍과 근면으로 견뎌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통령이 세계를 향해 공식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를 이룩한 개발도상권 선두주자임을 선포할만큼 당당해졌다.

만일 이승만의 고집대로 1948년 남한에 단독 정부가 수립되지 않고 1947년
가을까지 미국이 바랐던대로 좌우 합작 정부가 세워졌더라면 50년이 지난
지금쯤 한반도 상황은 어떠했을까.

역사의 가상 소설을 써본다.

아마도 분단은 모면했을지 모르나 47년 좌우 합작 정부로 시작한 동구권
여러 나라의 운명처럼 한반도 전체가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해 과거 루마
니아와 같은 개인숭배 가족 지배체제와 지금 불가리아 정도의 경제 수준을
가진 나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21세기를 앞두고 우리들의 지평은 이제 더 이상 좁은 한반도 안에만 묶어둘
수 없다.

앞으로 50년 미래를 내다보자.

결국 미국 평화체제 속에서 한국이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려면 보다 과감한
글로벌 어프로치(Global Approach)로 보편적 가치관을 수용해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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