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혼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TV로 야생동물을 본다.

내가 보는 TV고정프로는 세상을 알려주는 9시뉴스와 다큐멘터리들이다.

그중에서도 동물의 세계는 정말 좋아한다.

그들은 순후하고 욕심이 없다.

가면을 쓴다거나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혹독한 자연환경에 순응할 뿐 절대 파괴하는 일은 없다.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맹수들까지도 일용할 양식을 위한 먹이사냥을 할
뿐 재물을 쌓아놓기 위해 야비한 수단과 방법을 자행하는 비리는 모른다.

경제위기는 뒷전이고 인신공격을 일삼는, 정치자금이다 사정공방이다 하고
쌈질이나 하는 정치계는 더욱 모른다.

자기 손으로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잔악한 부정도, 아들을 요구르트로
독살한 아버지도, 새 아내와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8살짜리 딸을 내다
버리는 아버지도 물론 없다.

그들은 오직 하루 하루의 생존을 위한 사냥을 하고 번식기에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데 총력을 기울일 따름이다.

새터전을 찾아 갓 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악어가 우굴거리는 늪지대와
강을 건너는 얼룩말들의 생사를 건 대이동은 치열하고 장엄하기까지하다.

시속 70km로 달리 는 사나운 치타.

그들은 6개월 동안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독립할 때까지 2년 동안 책임지고
돌본다.

침팬지는 새끼를 업고 다니며 성장할 때까지 5년동안이나 양육한다.

더욱 아름다운 광경은 남극의 바다새들의 새끼 사랑법이다.

힘겹게 잡은 물고기를 토해내어 새끼에게 먹여주는 모습은, 정녕 오늘날
빗나간 부모가 본받아야할 교훈일 것이다.

이혼한 부부가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는 세상.

더욱 참담한 것은 대부분의 소년소녀 가장은 부모 없는 고아가 아니고
남편이 불구가 되거나 사고사하자 엄마가 가출해서 생긴 아이들인 것이다.

야생동물보다도 못한 책임감을 저버린 경악할 부정이요, 모성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이 부끄러울 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