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유저 사이의 커뮤니케이터"

인터넷 서비스업체 네토크의 강미나(27)씨는 웹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되물었다.

그래도 달리 설명할 말은 없단다.

전달하려는 정보, 그 정보를 구하려는 유저-

그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직업이라는 얘기다.

"정보의 중매쟁이"라면 맞을지 모르겠다.

웹 디자이너-.

자리를 잡은지 3년밖에 되지 않는 직업이다.

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활용된게 그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미나씨는 그런 면에서 고참이다.

스스로 "1세대"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녀가 전업 웹 디자이너로 출발한 것은 지난 95년.

꼭 3년째다.

그해 처음으로 홈페이지 경연대회가 열렸고 디자인 학원에 웹 디자인
강의가 개설됐다.

그녀의 말대로 선구자인 셈이다.

상명대 목공예과를 졸업한 강씨의 첫 직업은 가구 디자이너.

그러다 6개월만에 웹 디자이너로 변신했다.

정보의 바다를 형상화한다는 기대에 결코 망설임은 없었다.

컴퓨터와는 친하지 않았지만 미개척지를 먼저 밟는다는 즐거움에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다.

웹 디자이너는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웹 사이트 화면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가상의 공간 위에 도로를 닦고, 집을 짓는다.

가게나 놀이터 학교를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강씨가 그동안 디자인한 웹 사이트는 수없이 많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씨의 공식 홈페이지를 비롯해 네토크 홈페이지,
네토크 영화사이트, 네토크 음악사이트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한화기계 한독약품 에스콰이아 등 대기업 홈페이지도 그의 작품이다.

이 가운데 첫 손가락에 꼽는 작품은 백남준씨의 공식 홈페이지 "굿모닝
인터넷 드웰러(www://http.netalk.co.kr/dweller.start.html)".

96년 작품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의 거주자들이 백남준씨의 작품 세계에 직접 뛰어
들도록 만든 사이트다.

백남준씨의 작품이 워낙 난해해 작품 해석에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그해 여름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였다.

백남준씨도 "내 작품이 평이하지 않아 힘들었을텐데"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다.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는 작업은 컴퓨터 그래픽과 다를게 뭐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다르다.

강씨는 이 직업을 "바이트(byte)와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용량과 늘 다툼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페이지는 30KB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게 기본이다.

물론 사이트의 성격에 따라 그 이상의 용량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이트의 화려함에만 치우치다보면 전송속도가 제한돼 있는 탓에
유저들만 불편하다.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다보면 이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일이
허다하다.

제한된 용량과 시간을 두고 많은 정보를 어떻게 화려하게 포장해 유저들
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웹 디자이너 강미나씨의 고민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김영우 기자 youngwo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