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망 이후 4년여만에 북한의 권력승계작업이 공식 마무리되고
새로운 김정일시대가 열렸지만 극심한 경제위기 등 숱한 난제가 도사리고
있어 새로운 체제의 순항 여부는 미지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국가주석직을 승계하리라던 예상과 달리 헌법을
개정해 주석직을 폐지하고 외형상으로는 군사-외교-행정으로 3분된
지도체제를 선보였지만 김정일은 "국가 최고 직책"으로 권한이 대폭 확대된
국방위원장에 추대됨으로써 실질적인 권력기반을 한층 다지게된 셈이다.

김일성 사망이후 북한체제의 비정상적 운영이 남북관계와 대외관계에
불안정요인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인 만큼 북한의 체제정비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비정상적 유훈통치를 끝내고 외형적으로는
정상체제를 갖춤으로써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어느정도 정책의 일관성도 기대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김정일이 국방위원회의 강화로 체제정비를 단행한 것은 군우위
노선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 군사 경제 모든 분야를
군이 사실상 지휘토록 함으로써 병영국가적 성격을 더욱 강화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인공위성이냐, 미사일이냐를 놓고 혼선이 계속되고 있지만
북한군부가 다단계 로켓 발사를 통해 군사력을 대내외에 과시한 것도 군
우위정책의 일단을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북한의 태도로 보아 남북간 정치 군사적 긴장관계는 상당기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으며 남북경제협력도 다소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동안 남북경협을 적극 추진해오던 국내기업들도 북한이 경협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지나친 사례비 요구와 상대적 저임금의 이점 상실,
사회간접자본의 미비 등으로 의욕이 많이 저하된 상태다. 여기에 최근
북한의 강경노선 고수에 따른 투자손실에 대한 불안감으로 북한진출을
포기하거나 사업규모를 축소 조정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데도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경제살리기의 청사진 제시가 없었다는 것은 유감이다.

북한에 새로운 권력체제가 출범했다고 하여 극심한 경제난이 저절로 풀릴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난 완화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서
남한과는 물론 미국 일본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지금처럼 외부세계를 윽박질러 양보를 얻어내려는 벼랑끝
전술이나 비상식적인 돌출행동으로는 쌓이는 불신을 걷어낼 수 없다.

우리 정부도 북한의 새 체제가 어떤 노선을 택할지, 또 북한을 둘러싼
몇몇 의혹들이 어떤 식으로 벗겨지는지를 면밀히 지켜보면서 대북경협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대는 "군사국가"로 회귀하는데 우리만
햇볕론이니, 정경분리원칙이니 하여 일방적인 유화정책에 매달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할 수도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