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실장 >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상업.한일은행 합병발표
후 한일은행 장기 신용등급을 종전대로 B+로 평가하되 부정적 관찰대상이란
토를 달았다.

무디스는 주택은행에 "최근 얘기가 나오고 있는 조흥은행과 합병할 경우
주택은행마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합병이 성사될 경우 신용등급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들 두 신용평가기관의 지적은 현재 진행중인 금융구조조정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일면이 있다.

우리 경제가 오늘 이 지경에 오게된 것은 금융이 잘못됐기 때문이란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보면 그 구조조정은 당연하다.

지방에 본점을 둔 몇몇 은행의 퇴출만으로 금융구조조정을 끝내겠다고 했을
때 겨우 그게 전부냐는 반응이 나온 것도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문제는 덩치 큰 것들의 부실에 있다고 볼 때 대형 시중은행들에
손을 대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치고, 또다른 몇몇 은행들이 짝짓기를
한다고해서 오늘의 금융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 또한
너무도 분명하다.

부실은행과 부실은행간 합병, 그것은 어쩌면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S&P나 무디스같은 신용평가기관의 반응이 나오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대적인 금융구조조정을 하지않을 수도 없지만, 해봐야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 국면이고 보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사안의 본질이 이러하기 때문에 시각에 따라서는 시중은행간 짝짓기에
대해서는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특히 당사자인 은행원들 사이에서 그런 것 같다.

외자도입에 차질을 준다,정부에서 조금만 지원해주면 정상화될 것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불평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결제은행(BIS)자기자본비율 8% 충족만 목표로 한다면 은행원들의 주장은
확실히 일리가 있다.

합병에 따라 정부에서 지원해줘야할 금융규모가 더 커질 개연성은 절대로
없지 않다.

대형은행간 통합이나 이른바 빅딜에 대한 정부당국자들의 집착에는 그로인한
경제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효과, 곧 큰건을 성사시킴으로써 구조조정정책의
가시적인 성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대대적인 금융구조조정은 이미 기정사실이고, 또 반드시 그
의도를 부정적으로 볼 사안은 절대로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끝난뒤가 어떻게 되느냐다.

그것이 새로운 대형부실을 향한 출발점이 돼서는 안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진행중인 금융구조조정이 국민 세금으로 은행부실을 정부에서 메워주는
것만이어서는 안된다.

다시는 이번과 같은 구조조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오늘의 금융에 대한 책임은 어쨌든 은행원들 자신이 져야한다.

은행장과 임원들은 더욱 각별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자율이 없었기 때문에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사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 때문에 수많은 후배은행원들이 쫓겨났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금융가에 나돌고 있는 인사잡음은 그런 당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다.

오늘의 금융부실이 관치때문이라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이 과연 앞으로는 없을 일이라고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금감위도 구조조정작업이 끝나는 시점이후에는 지금과 달라지는 점이
있어야 한다.

은행합병 등 현재의 구조조정작업은 그 성질상 금감위의 주도적 역할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도 원칙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세부적인 사안에까지 직접
간여하려 들어서는 문제다.

금감위에 대해 정도가 지나치다는 불평이 금융계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유의할 대목이다.

외환은행 대주주인 코메르츠은행측에서 현 경영진에 대한 교체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그 녹취록을 제출하도록 했다거나, 물러날 임원과
유임될 임원을 금감위가 자의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우려해야할 일이다.

금감위가 옛날 재무부가 돼서는 안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