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 서울여대 교수. 경제학 >

거시경제 기초경제여건이 비교적 건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금번 한국의 경우
처럼 외환위기가 단기에 급속하게 진행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나이스
국장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 각국의 외환위기 중에서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급박한 상황이 전개된 주요 이유를 적어도 일본 하시모토
총리는 분명히 깨달았던 듯하다.

지난해 11월 24, 25일 밴쿠버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정상회담에서
그는 "일본이 단기채무 80억달러를 빼내가는 바람에 국제금융자본이 한국의
외환위기를 감지하고 빠져나가기 시작해 외환위기가 악화됐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도울 수 있는 길이 있으면 돕겠다"고 김영삼 대통령에게 얘기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짤막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97년 12월 IMF기준으로 보면 단기외채 8백2억달러, 장기외채 7백28억달러
였다.

한편 97년6월말 BIS(국제결제은행)가 발표한 한국 총외채의 국가별 규모를
보면, 일본 독일 프랑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22.94%, 10.44%, 9.74%
이고 미국과 영국이 각각 9.63%, 5.86%였다.

특히 일본은 독일 미국의 각각 2.19배 2.38배이다.

이런 외채규모에 비해 한국의 외채상환 능력은 어떠했는가?

97년10월20일 우리의 공식 외환보유고는 3백5억달러, 가용외환보유고는
2백25억달러였다.

일본이 80억달러를 회수해 가면 외채상환요구에 즉각적으로 지급할 수 있는
외화는 1백45억달러 남는 셈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빌려준 차환을 거부한 이유는 쌍방의
게임 참가자, 전략, 대가로 구성되는 게임이론으로 설명해 볼 수 있다.

이 경우는 한쪽의 전략이 게임의 결과를 일방적으로 결정짓는 전형적인
우월적 전략게임의 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동남아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던 일본 금융기관들은 97년7월 동남아
금융위기로 채권회수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큰 손해를 입게 되었고, 한국도
동남아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을 것이 뻔한 상태였다.

한국을 대상으로한 일본 금융기관들의 게임전략은 유동성 부족에 대비하고
동남아시아에서 입은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외채연장을 거부하는
한편, 그로써 한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외채협상에서 높은 프리미엄을
얻어내는 것이다.

뉴욕 외채협상에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최대 채권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금융기관에 외채협상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자신들의 얼굴을 감추었다.

실제로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일본을 위시한 외국 채권자들은 국제금융
시장에서 정크본드 수준에 이르는 프리미엄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주요 채권국인 독일 금융기관들조차 제동을 걸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금리였다.

이러한 폭리는 게임의 대가이며 결국 일본은 한국의 외환위기를 통해 이익
극대화에 성공한 반면, 한국은 자신을 상대로 이러한 게임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게임의 전략을 만들 수 조차 없었다.

게임적 사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자국에 치명타를
가져올 수 있는 상대국의 전략전개를 미리 상정해보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후반 국제자본이동의 특징이 바로 군집현상인 것을 감안할 때 일본에
대한 외채 편중도가 심한 상황에서 일본이 어떤 이유로건 한국에 투자된
자본을 회수해가게 되면 외채에 비해 외환보유고가 적고 경상수지가 적자인
한국으로서는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초경제여건 지표에만 연연하는 대신 기타 주요 채권국들의 자본전략을
주시하면서 그에대한 게임전략을 끊임없이 마련해나갔더라면 금번 외환위기의
충격은 훨씬 덜했을 것이다.

혹은 비록 외환위기는 발생한 상황이었지만 하시모토 총리의 밴쿠버에서의
제안을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한국정부는 일본금융
기관과의 게임에서 발생된 손실을 줄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이 끝난 것도 모르고 근무시간이 끝난 일본장관을 면담하려다
거절당하고 곧장 돌아온 부총리는 IMF와 약정한 의정서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은 일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