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켜보는 미국월가 은행 및 증권회사
한국담당자(코리아데스크)들의 시각은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부실한 은행과 기업을 퇴출시키고 공기업을 민영화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는 상당한 평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퇴출과정에서 일부 은행의 영업이 중단돼 금융거래가 마비되고
고용승계를 둘러싸고 마찰이 빚어짐으로써 회의적인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할 뿐,정작 당사자인 은행이나 기업들의
준비가 안 돼 있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정부도 퇴출대상 기업 근로자들의 태업이나 파업 등 예상되는 사태에
대비한 조치를 세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금융계, 기업들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행태에 대해 "외부상황에
대한 마지못한 조건 반사만 있지 능동적인 상황 타개 능력이 안 보인다
(reactive but not proactive)"는 따끔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일본계 기관들은 한국이 일본보다 개혁에서 앞서가고 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본인들의 요청에 의해 소속은행(증권사)과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한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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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계 A은행 =대기업과 은행들의 구조조정 조치는 진작 했어야 한다.

늦었지만 바람직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마디로 총론만 있을 뿐 각론에 대한 사전준비가 제대로 안된
것은 문제다.

한국 스스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취한 선제적(proactive) 조치라기
보다 외부압력에 끌려 내놓는 수동적이고 조건 반사적(reactive)인 대응으로
평가된다.

특히 은행들에 대한 구조조정 과정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예컨대 신한 등 5개 우량은행들이 동화 등 부실 은행들을 인수했는데
치밀한 사전계획이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돼 상황이 꼬였다.

월가의 금융기관들은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달 말까지 자구계획을
내놓으라고 한 조흥 상업 한일 등 대형 시중은행들의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이 서로 합병해 대형은행으로 변신하라는 게 정부의 주문인 것으로
안다.

또 대기업들도 전경련이 주축이 돼 이른바 "슈퍼 뱅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능동적인 조치가 나와야 한다.

또 최근에 이루어진 다른 사례에서와 같은 마찰이 있어서는 안된다.

좀더 구체적이고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대형화를 추구할 경우 그 목적부터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최근의 금융구조조정 사례에서는 노조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은행합병 과정에서 총파업이나 인수인계 차질등의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히 예상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시나리오별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데 우왕좌왕 했다.

<> 미국계 B은행 =이번 구조 조정은 한국에 "지시경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고 고질적인 가를 확인시켜주었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경제주체들 사이에 충분한 공감대(컨센서스)가 형성돼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는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고는 관료들
조차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 한국의 상황을 한마디로 묘사하면 "위에서는 밀어붙이고 밑에서는
세력을 과시(파업, 시위)하고, 중간층은 눈치나 보는 진흙탕(mess)"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아직 구조조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시장에 누가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겠는가.

<> 영국계 C은행 =부실은행을 과감하게 퇴출시키고 기존 시중은행간
합병을 통한 대형화를 유도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기본정책은 높이 평가할
만 하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경쟁력 없는 은행들이 지나치게 난립해 온 게
문제였다.

그러나 합병의 결과로 우량 은행들까지 부실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
우려된다.

런던 본점에서 이를 우려해 최근 한국계 은행들에 대한 대출을 신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해 왔다.

한국계 은행들에 부채상환 만기를 1개월 단위로 연장해 주던 것을 3개월로
늘려줄 계획이었으나 본점의 지시로 이달 말까지 보류키로 했다.

요즘은 은행들보다 기업쪽이 더 걱정이다.

최근 한국의 간판급 기업마저 차입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마저 갚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 일본계 D은행 =은행 구조조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속력을 냈으면 한다.

구조조정을 두고 여러가지 엇갈린 평가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조금이라도 일찍 맞는 게 나을 것이다.

정부가 주도해서라도 고쳐야 할 부분은 빨리 뜯어 고치는 게 옳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한국은 멀지 않아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회복할 것이지만,
솔직히 일본은 끝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문제는 기업이다.

월가에서 한국계 기업들의 이미지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차입금에 대한 만기를 누차 연장해주고 있는 데도 제때 갚지 않는
기업들이 적지않다.

기업 구조조정을 빨리 서둘러 업계 전반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 미국계 E펀드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향후 2~3개월 동안은
평가를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우량 은행들이 부실은행의 자산과 인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
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 보다는 한국의 거시경제 전반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정부가 금리를 억지로 떨어뜨리고 있는데, 현재의 금리하향 추세가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 지 회의적이다.

당초 한국의 올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 4~5%로 보았지만 두자리수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주가는 아직도 바닥을 다지지 못한 것으로 본다.

지금의 주가가 기업들의 모든 재료를 다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량 대기업들이 부실 계열사에 대한 편법적인 지급보증
관행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