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디 돈부시 미국 MIT대 석좌교수가 한국표준협회 초청으로 5일 방한했다.

돈부시 교수는 6일 전경련회관에서 "아시아 금융위기 진단과 향후 전망"을
주제로 강연했다.

7일에는 신라호텔에서 표준협회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특별
강연회에 참석, "한국기업의 구조조정 방향과 과제"를 연제로 특강할
예정이다.

돈부시 교수의 강연 내용을 이틀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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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기 보다는 자본시장의 위기
(capital market crisis)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 아시아 국가들은 단기차입자금으로 장기투자를 했다.

특히 달러나 엔화로 돈을 빌리면서도 이를 자국화폐로 상환하는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이런 행태는 환율이 지속적으로 안정될 경우에는 가능한 것이다.

환율이 급격하게 변동할 경우 거래의 일방이 이에 상응하는 리스크에
노출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아시아 금융기관은 그래서 대부분 주식이나 자산가치의 급격한 변동위험에
노출돼 왔다.

특히 이번 경우와 같이 국내 자산가치의 급격한 변동은 이런 자산을 보유한
기관의 재무구조를 급격히 악화시켰다.

일부 기관들은 충분한 리스크 헤지수단이 보완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도
높은 러시아나 남미 브래디 채권에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충격은 엄청나게 클 수 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 이런 금융기관 자산의 부실화는 국가신용의 하락을 유도했다.

국가신용의 하락은 여타 경제주체의 대외신용 혹은 차입능력에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

아시아 국가들이 이러한 리스크에 노출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들 국가들이
지금 겪고 있는 외환위기를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외부요인도 적지 않다.

이들 국가의 외환위기의 외부적 요인으로는 엔화 가치하락에 따른 상대적인
수출경쟁력약화 그리고 엔화가치의 하락을 적절하게 반영할 수 없었던 환율
제도를 들 수 있다.

아시아국가들의 금융 시스템이 이같이 취약해진데는 많은 원인이 있다.

우선 이들 국가의 정부가 금융 시스템의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고 대부분 투명하지 않게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중앙 은행들이 저지르는 중요한 실수 때문에 더욱 복잡해졌다.

다시 말해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무모하게 외환보유고를 고갈시켜
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하기까지 했다.

이같이 잘못된 정책과 투명성의 부재는 일부 관료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해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금융시스템 감독기능 소홀과 중앙은행의 정책적 오류가 취약한
금융시스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부패한 정부가 초래한 위기
이기도 한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영국이나 미국의 국내
금융시스템에서 일상화되어 있는 것 처럼 리스크를 통제하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금융감독 당국이 정교한 리스크 측정뿐만 아니라 자본
기준(capital standards)에 대해서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영국은 더 나아가 규정이나 감독기준이 수준 미달로 평가되는 지역에는
차관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차별화된 자본요건을 부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리스크에 대해서 그만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저한 관리가 국제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관행의 확산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금융문화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전세계 각국에서 모든 금융감독 당국이 대차대조표를 리스크 통제
지향적인 방법을 통해 평가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면 아시아의 경제
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위기상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는 실제 일부 국가가 자국의 대차대조표의 건전성을 평가하기 위한
기회로서 정기적으로 IMF의 자문을 실제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런 절차에 따라 해당 국가 감독 과정의 일부로서 리스크 분석이 제도화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본질적으로 올바른 금융 문화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전세계적으로도 리스크 수준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금융위기와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있는 또 한가지는 IMF가 금융
위기를 겪고 있는 해당 국가들에게 요구하는 정책의 타당성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IMF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역설한다.

IMF의 처방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주장에 따르면 금융을 안정시키는 과정에 사용되는 고금리는 건전한
신용에 타격을 입히고 재정 긴축은 그 때문에 경기후퇴의 요인들을 더해
주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긴축적인 통화 관리와 공적 금융(public finances)의 건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금융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통화 안정을 기해야 한다.

따라서 IMF가 금융 안정의 준비 단계로서 고금리를 고집 하는 처방은
옳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각국이 IMF의 프로그램에 따라 리스크통제를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만큼 위기 극복은 조기에 가시화될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금물이다.

아시아 경제는 내년에도 회복세를 보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올해 4%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보다 훨씬 낮은 성장률을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내년에도 7%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경제는 현재 매우 해결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일본경제가 거의 빈사 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미국이라는 지원자가
있었던 멕시코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은 아시아의 경제를 회생시키는데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아시아
경제 위기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한 부정적인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일본 금융권의 신용 경색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라는 부정적인
상황은 경기부양 효과를 상쇄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경기 후퇴는 일반적인 경기 후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 당국은 더 이상 효과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부에 대한 신뢰마저 잃는다면 일본 경제는 하강 국면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일본정부는 과감한 지출과 조세 삭감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엔화의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주도의 경기 회복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또 공급 측면의 성장을 통해 현재의 재정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관료주의
타파와 과감한 규제 완화정책도 실시해야 한다.

현재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일종의 경제 혁명이다.

홍콩을 포함한 중국 문제는 판단하기가 가장 힘든 사안이다.

사실 중국은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일본에서부터 한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의 모든 다른 나라들이
달러화에 대해 평가 절하를 하는 와중에도 달러화에 대한 자국 위안화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 결과 중국의 실제 환율은 분명히 과대 평가(overvalued) 됐다.

그러나 중국은 평가절하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위안화의 평가절하를 꺼리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이 자국화폐를 평가절하하게 되면 당연히 일본까지 포함하여
아시아 전역에 걸쳐 또 한 차례의 외환 위기가 닥치게 될 것이다.

수출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지 분명치 않다는 얘기다.

둘째 중국의 국내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평가 절하는 금융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설득력 있는 분석은 중국이 앞으로도 현 상황을 버티면서
아시아의 경제 주역으로서 역할을 담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앞으로 몇년동안은 낮은 성장을 감수할 것이란 예상이다.

아시아 국가중에서 가장 건실하게 보이는 나라는 필리핀이다.

경제 위기를 가장 무난하게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IMF의 처방을 착실히 이행해 현재 멕시코의 성공적인 사례에 가장
근접해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엄청난 외채 <>국내 은행권의 심각한 문제
<>권위주의 정부의 몰락으로 인한 정치적 진공상태 등 삼중고에 직면해
있어 조기 경제 회복의 가능성이 가장 낮다.

한국에서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관료들과 개혁에 대한 필요성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관료들은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어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순조롭게 출발했지만 이런 벽에 부딪혀 있다.

김 대통령이 만약 이러한 현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앞으로
현재의 일본과 같은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 정리= 권영설 기자 ysk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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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부시 교수 약력 ]

<> 1942년 독일 출생
<> 시카고대 졸업(경제학박사)
<> MIT 교수(환율 통화 인플레이션 무역정책 전문가)
<> 브루킹스연구소 공동연구원
<> IMF및 IBRD 자문역
<> 남미국가 경제자문관 역임
<> MIT 국제경제포드석좌교수(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