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불황의 시대가 찾아왔다.

월급쟁이들의 소득은 평균 30%이상 깎였고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돼
울상이다.

주식시장이 밑바닥을 해매고 고개숙일줄 몰랐던 부동산자산도 마침내
아래로 곤두박질치고있다.

경제 전반에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IMF에 SOS를 쳐야할 정도로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위기는 개인의 소비지출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에따른 저성장 고실업 고물가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는 소비빙하기를
초래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이런 때에 어떤 상품을 만들어야 제대로 팔릴까 하는 것이다.

이웃 일본의 기업들도 지난 90년대초 버블붕괴가 시작되면서 똑같은 고민에
직면했다.

이때 그들은 이를두고 "히트상품부재의 시대"라고 섣불리 단정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의 예언은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사정은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불황기에 빅히트상품이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심한 불황기에 히트상품을 탄생시키려면 잘 나가던 때(호황기)의
상품개발이나 마케팅방식을 적용해선 안된다는게 정설이다.

기존 관념을 완전히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중시장(매스마켓.Mass Market)을 겨냥하던 상품개발의
포인트를 틈새시장(니치마켓.Nitch Market)으로 돌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불황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계층에 관계없이 폭발적인 수요를 이끌어 낼수
있는 상품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고객층을 연령소득 성별로 세분화, 잘게 나눠진 고객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내놓아야 성공할수 있다는 말이다.

최근 일본에서 인기를 누리고있는 "시간절약상품"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장기 복합불황으로 마땅한 히트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해 골머리를
앓아 왔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동안 머리를 깎아주는 주유소부설 간이미용실은
지난해 7월에 처음 선보인뒤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재팬에너지의 주유소 한켠에 자리를 낸 이 미용실은 고객이 주유 세차
엔진오일 교체 등을 끝내는 15분동안 머리손질을 해준다.

물론 퍼머와 같은 긴시간을 요하는 손질은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 손님의 주류는 주부들이다.

이 미용실은 현재 한달 매출액이 2천만엔에 이르러 종업원 1인당 매출로
따져 업계 평균의 3배를 웃돌고 있다.

산요전기가 만드는 "반분생활 시리즈" 제품은 가전제품중 시간절약상품의
대표주자.

압력밥솥은 취사시간을 45분에서 15분으로, 열풍토스터는 빵굽는 시간을
3분에서 1분35초로 줄였다.

전자동세탁기는 8.5kg짜리 의류 세탁을 종전 90분에서 50분내로 단축시켰다.

산요전기의 백색가전제품 매출이 전년대비 10%나 떨어졌지만 이 시리즈제품
은 전년과 대등한 실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제품은 시간을 중시하는 고객층을 겨냥, 상품개발력과 마케팅을 집중
했다는 특징이 있다.

고객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 새로운 틈새시장을 창출한다면 불황의 파고를
거뜬히 넘을수 있다는 얘기다.

고객 니즈에만 부합되면 "불황기에 고가품은 안된다"는 등식도 여지없이
깨지고만다.

욕조기구 판매회사인 산와가 지난해 11월에 시판에 들어가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24시간 욕조".

설치비를 포함한 가격이 49만8천엔에 이르는 고가품이다.

그럼에도 시판후 6개월동안 6천대나 팔렸다.

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는 이 욕조는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소비자의 귀중한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은 물론 욕조주변에 액정TV와 비디오,
전화기설치가 가능해 입욕시간동안 하루 최고의 기분으로 만들어준다.

이 상품은 불황기에도 반드시 존재하는 고소득층에게 새로운 입욕문화를
안겨줌으로써 히트상품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장의 창출, 불황기의 히트상품학을 집약하는 말이 아닐수 없다.

< 강창동 기자 cd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