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기를 살리자"라는 말을 듣거나 "아빠 용기내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심각한 현실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나라의 빚이나 실업자 수가 늘어날수록, 금리나 물가가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권위인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권위가 주가 폭락못지않게 폭락하고 있는것 같아서다.

오죽하면 아버지를 아비부의 꼭지을 떼어버린 쓸쓸한 예에 비유하겠는가.

그만큼 우리의 아버지가 쓸쓸한 아버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쓸쓸한 아버지는 쓸쓸한만큼 기가 떨어지고 기가 떨어진만큼 권위도
떨어지기 쉽다.

귄위란 인격, 지위 등이 그 기능의 우위성을 공인시키는 능력이라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권위는 그런 것과는 다르다.

아버지의 권위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는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 자리를 지키려면 책임이 따른다.

그만큼 귄위는 중요한 것이다.

어떤 권력행사나 횡포가 아니다.

옛시절에는 아버지의 권위가 대단했다고 한다.

무슨일이든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가쯤으로 인정받던 아버지는 자신의
권위를 잘지켰다고 한다.

가부장적 시대에 있을 법한 일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시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대가 사람에 걸맞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어깨는 날로 처지고 고개는 숙인 정도가 아니라 꺾여진 상태이며 기마저
꺾인 작아진 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작아진 시대, 아버지의 고개가 숙여진 시대가 그야말로 위기의
시대이다.

아버지의 권위가 떨어지면 질서는 무너지고 아버지의 기가 떨어지면 의욕도
상실된 아버지의 어개에 힘이 주어지고 아버지의 고개가 똑바로 들려질때
권위는 회복되고 아버지의 자리는 복원될것 같다.

아버지의 자리가 곧 아버지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남자보다 더 강하고 당당해야 한다.

남자가 기둥이라면 아버지는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튼튼하지 않으면 기둥은 세워도 무너진다.

그만큼 주춧돌은 중요한 터전이다.

그런만큼 그터전은 지켜져야 한다.

아버지의 자리, 아버지의 권위는 권력도 위력도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자존심이다.

아버지의 자존심이 지켜지는 세상에서 "아버지가 최고다"라고 외치며 살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