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계에서는 요즘 JP모건의 더글러스 워너 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뉴 JP플랜"이 화제다.

이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전천후 종합금융형" 사업구조의
대수술을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은행업은 물론 M&A(기업매수.합병)중개, 파생금융, 신디케이트론, 증권
인수, 투자자문 등 잡다하게 벌려놓은 사업을 정리해 기업금융 등 가망성
있는 몇개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선포다.

미국에서는 드물게 시장점유율과 외형성장을 중시하며 "확장"에 승부를
걸어 온 JP모건으로서는 일대 방향전환이다.

"당장의 비용을 따지지 말라.

손길이 닿는 곳이라면 일단 뛰어 들어가 기반을 닦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다"는 오만에 가까운 경영전략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금융산업이 고도로 전문화.세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형추구는 거품을
낳고, 거품은 수익악화로 귀결될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사의 간판 사업분야인 M&A중개와 증권인수 부문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93년 각각 4.2%와 1.6%에서 작년에는 10.6%와 6.8%로 확대됐다.

하지만 경영수지는 반대방향의 커브를 그렸다.

같은 기간 수익은 16억달러에서 10억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다 아시아에 닥치는대로 팔았던 파생상품 등을 고스란히 대형부실로
떠안게 됐다.

워너 회장은 마침내 최근 이사회에서 "부실사업 일대정리"를 선언했다.

기업및 소비자금융과 부동산융자 등 자신있는 분야 위주로 사업을 구조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위해 핵심사업 중 하나였던 신디케이트 론에서 까지 손을 떼기로 하는
충격요법을 내놓았다.

해당부서의 반발이 뒤따르자 워너 회장은 더 강도 높은 "회사 체질개선"으로
대응했다.

하버드 예일 등 아이비 리그를 졸업한 신입사원 출신자 위주로 구성해 온
회사 간부진을 "외부수혈"로 바꾸어 버렸다.

터줏대감을 우대해 온 전통을 과감히 깨고 유능한 외부 경력자를 스카우트
함으로써 조직의 혈행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워너 회장의 "뉴 JP플랜"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의
사활을 건 구조조정의 전형을 보여준다.

전통과 관행을 과감히 무너트리는 최고경영자(CEO)의 결단이 구조조정의
구심점이다.

그들의 선택은 하나같이 "발상의 전환"이었다.

반대가 있더라고 머뭇거리지 않는 책임감이 회생으로 이어졌다.

마땅치 않을 땐 최고경영자 마저도 밖에서 채운다.

패스트 푸드의 대명사로 통하는 맥도널드사가 매출부진에 따른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선택한 대안도 카리스마적인 최고경영자의 영입이었다.

새 CEO로 선임된 잭 그린버그 사장은 정식취임도 하기 전인 지난 17일
강도높은 회생책을 내놓았다.

창업이후 43년간 고수해 온 종신고용제를 철폐시킨다는 내용이다.

본사직원의 23%를 정리해고한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위기를 최고경영자가 전략적으로 헤쳐 나가는 "톱다운형 구조개혁"은
IBM GE(제너럴일렉트릭) 코닥 컴팩 등의 경우에서 이미 그 성과가 확인됐다.

특히 모토로라에 이어 코닥을 벼랑 끝에서 건져 낸 조지 피셔 회장의
사례는 위기상황에서 최고 경영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피셔 회장은 본업인 필름사업 외에 제약 가정소비재 의료기기 등으로
다각화돼 있던 코닥의 비주력부문을 무더기로 팔아 치웠다.

사업정리를 통해 조달된 80억달러로 장기부채를 상환했다.

거품사업 제거및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일궈 냈다.

컴팩은 지난 91년 엔지니어 출신의 에커드 파이퍼 회장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하면서 위기를 벗어났다.

파이퍼 회장은 일선영업 시절의 경험을 살려 부품 거래처를 전면적으로
갈아치워 2년만에 부품조달 비용을 5억달러 이상 절감했다.

또 부품공통화라는 아이디어를 실행해 대당 11달러가 들던 PC섀시 조달
원가를 단 1달러로 줄였다.

무려 90%이상 비용을 감축한 "신화"를 만들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CEO들의 이런 역할이 국가경영에서까지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좋은 예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사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FOB(Friends of
Bill: 빌의 친구들)라는 비공식 자문모임이다.

클린턴 대통령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을 비롯해 워너 피셔
파이퍼 등과 수시로 만나 이들의 조언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클린턴이 친노조 성향의 진보적인 민주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통상 금융
무역 등 주요 경제이슈에서 균형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FOB"의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정치권과 기업인의 만남이 "유착"으로 귀결되고 최고경영자가 이런저런일로
좌고우면해야 하는 한국의 현실과는 대비가 아예 불가능하다.

위기돌파 능력을 갖춘 CEO의 역할이 한껏 존중받는 미국의 상황이 "라이벌
없는 독주"의 또 한 축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