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현 < 서울대 의대교수 khcho@plaza.snu.ac.kr >

지방자치가 이루어지지 않던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소망했다.

모든 일이 중앙 공무원들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행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부활된 지방자치제는 크게 기대를
모았던 것이 사실이다.

막상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보니 예기치 않던 부작용이 불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지역이기주의이다.

자기 지역의 이익만을 고려하게 되니까 수도권의 상수원 보호지역에도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되었고,쓰레기 처리문제로 다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실망스러운 것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망국적인 지역감정을 부추기는가 하면, 상대방에 대한 파렴치한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는 경우가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할 정도가 되면 사회적으로 지도적인 인사인데, 어떻게
저런 낯뜨거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배신감과 함께 우리의 선거수준은
이정도 뿐이 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자조적인 느낌도 갖게 된다.

건국이후 우리는 여러차례 선거를 치루었다.

자유당 시절의 부정선거는 결국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게 했고,
3공화국시절에도 부정선거, 타락선거의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체육관 선거라는 것도 경험했다.

아직까지 우리는 지역감정의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부정선거의 시비는 거의 사라진 대선과 총선을 치루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성숙해진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번 지방선거전의 혼란을 개탄하면서 구청장이나 구의원까지 뽑을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올바른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진국과 같은 건전한
지방자치의 정착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유권자의 슬기로운 선택이 기대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