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정말 어렵다.

어디를 둘러봐도 밝은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외국인들은 투자자금을 환수하고 실업은 급증하고 있다.

기업들의 잇따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노사분쟁으로 확산될 양상이다.

그러나 가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이 외국인 투자유치다.

김대중대통령도 이를위해 미국방문에 나선다.

대통령이 직접 뛰어 한푼이라도 더 들여오기 위해서다.

특히 제조업분야에 외국인투자유치가 이뤄지면 싼자금이 장기로 들어올뿐
아니라 그 자체가 엄청난 고용을 창출한다.

외국인투자유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외자유치를 통해 경제를 부활시킨 영국 등 외국의 사례를 현지 직접취재를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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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주최국인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로부터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지역구에 있는 한국기업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말이다.

블레어 총리의 지역구는 북잉글랜드지역의 스톡턴시.

삼성전자 현지법인이 있는 윈야드파크가 바로 그 안에 있다.

삼성의 투자덕에 고용이 늘어 자신의 인기가 올라갔고 그것이 정치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외국인투자는 이처럼 영국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중 하나.

투자유치정도에 따라 선거에서 당락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각 지방에선 외국인투자자들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준다.

인근 대도시 뉴캐슬에서 윈야드로 가는 길 이름이 아예 삼성애브뉴(가)일
정도다.

삼성애브뉴를 지나 윈야드파크로 들어가면 곳곳에 준공식때 엘리자베스
여왕이 참석했던 사진이 걸려있다.

"영국여왕이 이곳을 찾은 것은 아마 사상 처음일 것"(윤미경 삼성전자
현지법인 홍보담당)이라고 한다.

고용을 늘려 준다는데 왕실도 가만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탓이다.

여왕은 지난해 2억7백만파운드어치를 수출한 삼성에 영국기업의 최고
영예인 "여왕포상"을 수여했고 이때 받은 깃발이 지금 태극기 유니온잭과
함께 윈야드공장입구에 펄럭이고 있다.

외국인투자유치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36세의 젊은 야당(보수당)당수인 윌리엄 헤이그.그도 웨일스장관시절인
지난 96년 7월 서울을 방문, LG그룹의 투자유치에 열을 올렸던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5월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헤이그의 뒤를 이은 론 데이비스
장관도 취임직후 곧바로 한국을 방문했다.

26억달러를 투자하는 거대고객 LG에 자신의 취임을 "신고"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이 외국인투자에 심혈을 기울이는 데는 그럴만한 "쓰라린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세계를 지배하며 경제부흥을 누리던 영국은 60,70년대
위기를 맞는다.

석탄 철강 조선 등 주력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실업이 크게 늘어나지만
노조의 강력한 복지투쟁은 그칠줄 몰랐다.

이른바 영국병.

70년대후반 캘러한 총리시절 "다우닝가의 실제주인은 노조"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일부지역의 실업률은 20%를 넘기도 했다.

캘러한 총리는 결국 76년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자본주의 종주국의 경제주권 상실.

한때 태양이 지지않는 나라라는 호칭까지 받았던 "제국의 몰락"이었다.

79년 새로 집권한 대처 총리는 외국인투자유치를 통해 난국을 타개하려
했다.

대대적인 국영기업민영화 행정개혁 등과 함께 실시된 이 정책은 외자유치와
고용창출을 동시에 겨냥했다.

"실업자들에게 연금과 실업보험을 주는 대신 공장을 세우는 기업에 보조금
을 주는게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한 정책"(나이젤 휘첼로 웨일스개발청부청장)
이라는 판단에서다.

대처 총리는 외국기업에 대해 자국기업과 똑같은 대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대처리즘''은 반대도 많았다.

영국의 자존심이던 자동차기업들이 하나둘씩 넘어가자 의회에서도
시끄러웠다.

대처는 그러나 "영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은 모두 영국기업이고 영국에서
생산되는 닛산자동차는 영국자동차"라며 정책을 밀어붙였다.

최근 마지막 남은 영국자동차 롤스로이스(비커사)를 놓고 독일의 BMW와
폴크스바겐이 치열한 인수경쟁을 벌일때 언론들은 누가 더 많은 돈을 줄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맞췄다.

"자존심" 논쟁은 이미 옛날얘기가 되버렸다.

적극적인 투자유치노력은 유럽으로 향하는 외국인투자의 40%이상을 영국에
쏠리게 만들고 있다.

제조업 총고용의 15%, 생산의 20%를 외국기업이 담당하는 등 외국인투자는
이제 영국경제의 젖줄이 되었다.

지난 3월중 영국 실업률은 4.9%.

실업률이 10% 안팎인 유럽국가들중에서 "5% 미만"의 실업률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수치다.

경제성장률도 꾸준히 3%대를 넘어서고 있다.

이같은 눈부신 성과가 정부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마이크 폴리티어 영국상무부 대영투자국(IBB) 아시아태평양담당국장은
"영국에 들어온 업체들을 조사해 보면 해외투자유치 성공비결로 중앙정부의
개방성과 노동자들의 긍정적 인식, 그리고 현지주민의 친근감을 든다"고
설명한다.

정부도 열심히 하지만 노조와 일반국민들의 인식변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그는 "외국인투자에 부정적인 기업들도 많았으나 그들은 지금 대부분
도태됐다"며 "경쟁력이 없어 무너진 영국기업보다 고용을 많이 해주는
경쟁력있는 외국기업이 당연히 더 선호된다"고 말한다.

영국 노조는 어쩌면 기업인들보다 외국인투자에 더 호의적이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일본의 닛산자동차를 북잉글랜드지역에 유치할
때는 뉴캐슬 운송노조대표들이 직접 일본까지 찾아가 투자를 설득하기도했다.

"실업의 고통 대신 외국업체와의 협력을 선택했다"는게 당시 일본행을
주도한 노조지도자 조 밀(현뉴캐슬 보건소장)씨의 말이다.

이 지역으로의 외국인투자유치를 담당하는 NDC(영국북부산업개발공사)이사회
멤버의 3분의 1이 노조대표들이란 점은 영국의 노조가 외국인투자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말해준다.

"외국인투자=고용창출"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영국 국민들은 그래서
외국인에게 가능한한 친절히 대하려고 한다.

실업의 고통이 심했던 지역일수록 외국인투자자는 더욱 "귀하신 몸"이다.

"한국의 기업인들이 영국투자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현지에 가면 놀라는
일이 하나 있답니다. 시골지역인데도 호텔에서 환전을 하려 하면 "호텔
보다는 은행의 환율이 좋으니 그리로 가십시오"라고 한대요. 그래서 은행에
가면 "우리 은행보다는 저쪽 은행의 환율이 좋으니 그리로 가십시오"라고
할때 영국투자결심을 굳힌다고 합니다"(최학 주한영국대사관상무관)

중앙정부건 지방의 투자유치기관이건 한글로 된 명함을 내밀며 한국말로
인사하려 애쓰는 영국인들.

한국기업인들과 상담할때 웨일스기와 태극기를 교차시킨 배지를 달고
나오는 세심함으로 "고객감동"을 주려는 웨일스 개발청직원들.

영국경제는 바로 정부와 노-사, 그리고 일반시민들이 함께 엮어내는
"외국인투자유치 범국민운동"을 통해 부활하고 있다.

< 런던=육동인 기자 dongi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