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은 먼데 또 파업인가.

산업전선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조선 등 강성노조가 27일부터 파업에 돌입
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산하 1백30여개 사업장이 이에 참여할 계획이다.

정리해고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내달 10일 총파업하겠다는 일정도
제시했다.

반면 정부는 불법파업에 강력대응할 태세여서 정면충돌소지도 있다.

파업은 이제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이 된 것이다.

26일 주가가 곤두박질친 것도 이런 우려 탓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또 파업인가"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다.

경제난 하의 파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경제는 온국민이 손잡고 뛰어도 회생을 장담하기 어려울 만큼
어렵다.

지난 1분기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3.8%였다.

복합불황신호라는 해석도 나왔다.

새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달라진게 별로 없다.

투자장벽을 허물고 있어도 외국인들은 투자를 망설인다.

지난 4월말현재 외국인의 대한 투자실적은 5억6천만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억6천만달러보다 3분의1수준으로 격감했다.

산업구조조정은 원점에서 맴돈다.

실업자행렬은 나날이 길어진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인도네시아 사태가 한국을 흔들어 놓았다.

많은 기업들이 투자한 돈을 떼일 판이다.

환율과 금리, 주가는 이에 맞물려 요동치곤 한다.

외국의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두단계씩 낮추고 있다.

국가위험도가 인도네시아에 버금간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6월 위기설"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6월의 위기란 바로 제2의 경제위기를 가리킨다.

그 분수령은 내달 4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면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고 노사문제가 더
시끄러워질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이런 시기에 대통령이 내달 6일 미국을 방문한다.

뉴욕에서는 투자유치를 위한 로드쇼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대통령의 미국방문은 세일즈외교의 성격을 갖는다.

이 기간중 과격시위나 파업이 일어나는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것은 곧 한국에 투자하지 말라고 시위하는 것과 같다.

외국이 한국의 노사문제에 얼마나 민감한지는 언론보도를 보면 잘 나타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는 최근 "한국기업들의 정리해고로 생계수단을 잃게된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을 준비중이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썼다.

이 신문은 이어 정부와 노조간의 휴전이 5월1일 노동절시위를 계기로
깨졌다면서 김대중 정부는 이제 호전적인 노조를 봉쇄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기사는 더 구체적이다.

"인도네시아사태 아시아경제재건에 그림자"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은
불안한 노동문제에다 인도네시아사태까지 겹쳐 해외자금조달에 지장이
생기게 됐다고 썼다.

한국의 노사문제는 단순히 한국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IMF관리체제에 들어간 지금은 더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문제는 곧 채권국들의 이해관계로 직결되는 까닭이다.

우리가 올해 갚아야할 외국빚은 3백63억달러가 넘는다.

이중 2백58억달러는 만기연장했고 1백5억달러는 갚아야 한다.

한마디로 허리띠를 조르고 뛰어야하는 비상시국이다.

노사정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돼야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노총은 제1기 노.사.정대타협정신을 살려 협상테이블로 돌아와야 한다.

대화를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나가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의 극한 대립으로는 난국을 돌파할수 없다.

사용자와 정부도 근로자들의 슬픔을 감싸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질시하고 반복할 때가 아니라 위로하고 격려해주어야 하는
특수상황이다.

우리가 갈길은 너무 멀고 험하기 때문이다.

< 김형철 사회1부장 kimhc@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