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정보통신부장 kunny@ >

"빈대 죽는 맛에 초가삼간 다 태운다"라는 우리 옛 속담이 있다.

크게 손해를 볼지언정 미운 것 없어져서 좋다, 별것 아닌 일로 분풀이를
하다 큰 피해를 본다는 얘기쯤으로 풀이된다.

그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얘기일 수 있다.

특감부터 따져 몇달을 끌어온 환란수사, 개인휴대통신(PCS)사업자선정
비리수사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온것 같다.

짐작컨대 파장을 줄이는 쪽으로 매듭지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옛 정권 고위관료 몇 명의 사법처리,연루된 기업인에 대한 일정수준의
배려(?)...

난리법석을 떨었는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더라는 태산명동서일필인지,
아니면 IMF경제난을 고려해 검찰이 "발상의 전환"을 한것인지 현재로는
알수 없다.

하루가 급한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아무튼 빠른 결론이 다행일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뒷맛은 영 개운칠 않다.

환란과 관련해 정책판단의 문제를 과연 사법처리대상으로 삼을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언제든 교도소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기업인들이 직접 관련된 PCS비리수사쪽으로 가면 더욱 납득할수 없다.

문제제기의 시작과 그것을 풀어나온 과정이 그렇다.

그것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PCS수사와 관련된 간단한 숫자만 보자.

이 수사과정에서 출국이 금지됐었거나 아직 금지돼있는 사람은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진을 포함해 27명이다.

가택수색은 10여명(여기엔 편법도 동원됐다).

예금계좌추적을 당한 관련자는 무려 1백여명에 이르렀다(그중에는 사업자
선정당시 장관의 여비서계좌도 포함됐다).

서민들이 문앞에도 가기 싫어하는 검찰에 조사받기 위해 소환된 사람은
기업관계자 30명, 사업 허가당시 심사위원 20명, 관련 공무원 10여명 등
모두 60여명이었다.

무더기에다 무차별 수준이다.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이처럼 방대한 조사가 예전에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기막힌 일도 있었다.

어떤 회사의 경우 거액의 외자도입을 위해 외국 신용평가회사와 회의를
하는 현장에 수사관들이 밀어닥쳤다.

소동에 놀란 신용평가회사 관계자들은 서둘러 자리를 빠져 나가고.

투자협상은 즉각 중단될수 밖에.

나중에 주무장관이 나서 "문제없을 것"이라고 해명까지 해야했다.

이쯤되면 독안에 든 쥐 잡자고 장독을 깨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실제로 이번 수사대상이 된 기업들이 입은 피해는 가벼운게 아니다.

사업허가과정이 정당치 못했다는 혐의만으로 기업이미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고 은행들은 대출금회수에 들어가 심각한 경영난까지 겪어야 했다.

검찰에 몇번 불려가 조사받고 나온 기업인들, 그동안 경영은 뒷전이었고
이제는 아예 기업할 마음이 싹 가셨다고 말한다.

누구든 죄를 지었다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엄정한 법집행과 적법한 절차를 고집하는 검찰을 비난할수는 없다.

그것이 원칙이고 질서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원칙의 적용도 경중완급을 따지지 않는다면 생명력을 잃을수
밖에 없는 법이다.

솔직히 IMF 한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되는 오늘의 난국을 불러온 책임소재를
가리자면 그 상당부분이 기업에 있다는 것을 부인할수는 없다.

거품경제속에서 앞뒤 보지않고 팽창지상주의와 차입경영에만 골몰한 결과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그들의 옛 잘못만 탓해서 무엇이 나아질수 있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명제는 IMF라는 "괴물"을 불러들인 원인제공자가 우리
기업들이었다면 이제 그것을 극복하고 몰아내는 주체도 우리 기업이라는
점이다.

실업인구 1백40만명, 그들을 누가 구제할수 있을 것인가.

지금은 하루가 급하다.

여기서 머뭇거리다가는, 기업인들을 "의욕상실증"환자로 내몰아서는 우리
경제를 회생시킬 방법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옛 일에만 매달리는 어리석음도 없다.

초가삼간 다 태우고 나면 빈대잡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