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1년초 서울 용산구 동자동 43번지에 있는 한국성냥공업협동조합에
취재를 하러갔다.

최도학 협동조합 전무이사를 만나 성냥산업 현황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때 조합에 가입된 성냥제조업체는 지역별로 경북 7개, 경기 6개, 충남
6개등 모두 23개사였다.

이들의 월생산량은 3백만통 정도.

이들은 파키스탄 등에 연간 70만달러어치의 성냥을 수출하는 등
외화가득에 기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성냥공장이 처음 생긴 것은 1907년.

인천의 조선인촌이 최초였다.

그때만 해도 성냥공장이란 요즘의 반도체공장에 해당할 만큼 중요한
산업이었다.

이어 군산인촌 수원인촌 삼공인촌 부산인촌등이 설립되면서 일반가정에
성냥이 보급됐다.

그러나 이 업종은 화재위험이 커 많은 업체가 뛰어들기는 어려웠다.

실제 부산의 남선인촌과 부산인촌은 화재로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자동 두약침점기가 개발되면서 성냥공장은 3배10여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 80년대초 1회용라이터가 나타나면서 성냥공장은
급격히 줄어 15개업체가 명맥을 유지하다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지난 62년 3월 설립된 성냥협동조합도 84년 6월 문을 닫았다.

성냥조합처럼 중소기업협동조합의 흥망은 그 업종의 성쇠와 맥을 같이
한다.

업종이 쇠퇴하면 조합도 망한다.

90년대들어 목할저(나무젓가락)를 비롯 대체신탄 당면 토기 LPG용기등
15개 업종의 조합이 변화에 못견뎌 문을 닫았다.

이들은 대부분 전무이사 한사람과 여직원 한명이 조그만 사무실에서
2~3년 명맥을 유지하다 폐업한 것이다.

이에 비해 일부업종은 생산품의 용도를 바꾸면서 협동조합의 명칭도
바꿔 적응해나가기도 했다.

황산알루미늄조합은 무기응집제조합으로 이름을 바꿨고 안경조합은
광학조합으로, 메리야스연합회는 니트연합회로, 침구조합은 침장조합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성장해왔다.

업종을 추가하기도 했다.

염료조합이 염료안료조합으로, 계면활성제조합이 계면활성제
접착제조합으로, 계량기조합이 계량계측기조합으로 변모했다.

조합의 변화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업종별로 세분화되는 경향.

한가지 업종에서 여러가지 협동조합이 떨어져 나왔다.

전국규모조합중 가장 새끼를 많이 친 조합은
프라스틱조합.폴리프로필렌조합을 비롯 염화비닐관조합 재생프라스틱조합
등이 분리돼 나왔다.

업종별로 협동조합 설립이 세분화되면서 얼른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의 조합도 많아졌다.

육채가공(햄버거) 제함식품(팥앙금), 제낭(천막류), 화스나(지퍼),
연식품(두부) 등이 그렇다.

조합이 세분화하는 경향에 대해 기존조합들은 가끔 반대를 한다.

이로인해 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시멘트연합회에서 레미콘연합회가 빠져나올 때 특히 심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협동조합이 2만개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앞으로 더욱
세분화가 이뤄져야 할 것같다.

반면 성냥조합처럼 한시바삐 문을 닫아야 할 조합도 무척 많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협동조합수는 모두 7백17개.

이들중 적어도 10개 이상이 유명무실하다.

더 이상 "인천의 성냥공장"에 매달리지 말고 첨단 부품분야에서 새로운
조합을 만드는데 힘을 기울이자.

< 중소기업 전문기자 rh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14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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