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에 반대하는 2만여명의 군중이 서울 한복판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미국 CNN)

"근로자들의 반발로 한국정부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될
전망이다"(일본 NHK)

근로자의 날인 지난 1일 서울에서 벌어진 가두시위에 대한 세계 주요언론의
반응이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프랑스 독일 언론들도 이날 시위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보도는 하나같이 경제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나타났다는 주석을 달았다.

세계언론들의 이런 보도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채권금리를 뛰게 했다.

예컨대 10년만기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의 가산금리는 3.45%로 치솟았다.

불과 며칠전만 해도 3.23% 수준이었다.

한국증시는 곤두박질쳤다.

외국인들이 "팔자"로 돌아선 탓이다.

2일 종합주가지수는 14포인트나 급락했다.

400선붕괴도 시간문제로 다가왔다.

외국 신용평가회사는 한술 더 뜬다.

미국의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한국의 노동불안이 지속될 경우
국가신용등급 조정에 악영향을 줄수 있다고 밝혔다.

오는 11일부터 민주노총을 방문해 노동계동향을 파악하겠다고 했다.

전례없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불과 5개월전의 일을 벌써 잊은 것인가.

작년 12월3일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내밀때 넘겨준 통화주권을
되찾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한국의 신용도는 아직도 투자부적격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노동계의 반발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건 사실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정리해고를 보면 그렇다.

노조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노동계의 불법행동이 합리화될수는 없다.

현재의 상황은 IMF 구제금융이 시작됐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를 넘어섰고 환율이 안정됐다고는 하나 아직은
"불안정한 안정"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투자가들은 당장 투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다.

"노조의 반발이 계속된다면 한국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금융지원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게 이들의 공공연한 얘기다.

현재 정부를 비롯한 각 경제주체에 주어진 과제는 도저히 감당할수 없는
지경이다.

기업및 금융기관 구조조정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수출도 주춤거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런 과제를 풀어가려면 좋든 싫든 외국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우리힘만으로 할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기업구조조정을 하려해도 쏟아지는 매물을 살 기업이 국내에는 없다.

금융구조조정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재정만으로 감당하기는 벅차다.

일자리를 늘리면 더없이 좋으련만 국내자본만으론 어림없는게 현실.

게다가 한번 금융위기를 겪으면 제2의 금융위기를 피하기 어렵다는게
역사의 교훈이다.

멕시코의 경우가 마찬가지였다.

지난 95년 IMF 구제금융을 받은 멕시코는 1년도 안돼 제2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스탠리피셔 IMF 부총재도 이런 점을 감안, "한국은 앞으로 6-9개월동안
상상하지 못한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제2의 금융위기설은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위기설의 1차적인 책임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이 져야 한다.

구호만 난무한 개혁과 지방선거만 의식한 정쟁 등 외국인을 내쫓고 있는건
다름아닌 정부와 정치권이다.

그러나 노사관계가 외국인들이 한국의 개혁정도를 판단하는 잣대로
자리잡고 있는 이상 노사안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외국인들에게 "제발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노동계의 행동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그건 자해행위와 다를게 없다.

외국인투자가 줄어 제2의 금융위기가 현실화되면 기업과 금융은 더욱
위축될수 밖에 없다.

그러면 고통의 기간이 길어질 뿐이다.

노동계는 지금 ''경제''를 생각할 때다.

한국경제는 벼랑끝에 서 있다.

< 박영균 경제부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