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외국자본을 싫어하는 배타주의가 첫 걸림돌이다.

"뭐라고요. 전기 장사를 외국에 넘긴다고요"

한국전력의 발전사업을 외국투자가들에게 팔 것이란 보도를 들은 국민들의
일부 반응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우리나라다.

IMF시대의 공기업 매각은 국제입찰을 포함한다.

문민정부 땐 재벌의 공기업 인수자격이 논란거리였다.

경제력집중 때문이다.

이젠 재벌은 돈이 없다.

외국자본에 기대할 길 밖에 없다.

국내 대기업도 외국투자자와 손을 잡아야 입찰장에 기웃거릴 수 있다.

"문전옥답을 남의 손에 넘겼다"는 식의 국수주의적 비난도 부담이다.

걸림돌은 또 있다.

기득권층의 반발이 변수다.

역대정권중 공기업 민영화 플랜을 가장 거창하고 화려하게 짰던 YS정권.

결국 정치권 관료 전문가집단 노조 언론등의 연합전선에 밀렸다.

대부분 스케줄만 짜놓고 몇번 수정끝에 흐지부지됐다.

95년중 완전민영화가 예정됐던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중공업이 대표적인
사례.

당시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보자.

"민영화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결과제가 해결돼야한다"

민영화 지연을 위한 포석들이었다.

"공기업 민영화의 성공여부는 정치권 관료 노조등 기득권 세력의 로비와
저항을 얼마나 물리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공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예산위원회 간부의 말이다.

산업자원부 산하 공기업은 한전등 무려 50개.출연연구기관은 산업연구원등
6개다.

산자부엔 비상계획관을 포함해 국장급이 12명이다.

56개 투자.출연기관을 국장 1명당 평균 5개꼴로 맡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관의 예산.인사 통제권은 상전인 산자부 관료에게 있다.

산자부 뿐만 아니라 재경부 건교부등 해당 부처들은 대부분 공기업
민영화 얘기만 나오면 산하기관과 "한통속"이다.

공기업은 정치권의 "낙하산인사 훈련장"이다.

새정부 들어 주택공사 석유개발공사 광업진흥공사 남해화학등 정부산하기관
의 단체장에 정치인들이 줄줄이 들어앉았다.

공기업사장의 경영능력과 전문성을 강조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약속과는
거리가 먼 인사다.

선거 전리품으로 공기업 임원자리가 동원되는 한 민영화는 공염불로
끝날 소지가 다분하다.

80년초반 한일은행등 몇몇 시중은행의 민영화, 87년이후 포항제철
한국전력의 국민주 방식민영화가 속빈 강정의 표본이다.

민영화가 아닌 "민유화"였다.

소유권은 민간에 넘어갔지만 관료들은 인사권을 놓지 않았다.

"경제력 집중"도 관료들이 내세우는 명분좋은 방해책동의 하나다.

증시상황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통신의 상장을 둘러싸고 증시상황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IMF체제로 공기업 민영화의 여건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과거처럼 "계획 -> 일부실행 -> 지연 -> 재계획"의 면피성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국개발연구원
남일총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정구학 기자>


[[ 공기업 민영화 추진과정 ]]

<>1차 민영화계획(68년)

-한국기계공업(대우중공업) 대한통운 대한해운공사(대한선주)
대한조선공사 인천중공업(인천제철) 대한철광개발(이상 68년)

-대한항공공사(69년) 한국광업제련공사(70년) 대한염업(71년)
상업은행(73년) 한국수산개발공사(73년) 대한재보험공사(78년)

<>2차 민영화계획(80년)

-대한석유공사(80년) 대한준설공사(81년) 한일은행(81년) 제일은행(82년)
서울신탁은행(82년) 조흥은행(83년)

<>3차 민영화계획(87년)

-외환은행 증권거래소 등 5개 기관을 완전민영화하고 포철 한전통신공사
등 6개기관을 부분민영화하기로 했으나 증권거래소 매각, 포철지분
34.1%와 한전지분 21.0%를 국민주방식으로 민영화한뒤 중단

<>4차 93공기업민영화계획(93년)

-대한중석 한국비료 고속도로시설공단 새한종금 등 7개사 완전매각하고
국민은행 외환은행 이동통신 등 11개사 부분매각했으나 민영화
예정이던 61개사중 가스공사 한국중공업 등 대부분은 보류

<>5차 민영화계획(수립중)

-한국전력 등 1백8개 공기업대상 매각여부 분류작업 98년 6월말 확정,
98년 하반기부터 매각실시, 기획예산위원회주관


[[ 영국 민영화 주요 사례 ]]

<>영국석유(BP) = 1979년. 최초의 민영화, 직접매각

<>영국항공(BA) =1981년. 제조업체자본의 51.6% 매각

<>전신전화국(Cable and Wireless) =1981년. 단계적 매각, 83년에 추가매각

<>방사능화학약품제조회사 = 1982년. 완전매각

<>국립화물컨소시엄 =1982년. 기업관리자 및 근로자 대상매각

<>영국항만연합(ABP) =1983년. 매각을 통한 재원조달로 설비투자

<>영국국영호텔 27개 =1983년. 철도회사(BR)소속이었으나 각각분리 매각

<>영국통신(BT) =1984년. 대규모매각(주식가치 40억파운드 가량,
2천4백만명의 일반국민이 매수참여)주식신용판매방식 도입, 경쟁도입후
민영화, 조정위원회를 두어 BT의 독점권 악용 방지

<>영국가스공사(BG) =1986년. 분리매각이 아닌 전체 매각

<>비커스조선소 =1986년. 근로자 지방은행 지역주민의 컨소시엄이 매수

<>롤스로이스 =1987년. 2차대전후 국유화 했었음.

<>국립버스회사 =1987년. 부문별 매각, 첫해 13개

<>영국공항청 =1987년. 총선이후에도 지속된 민영화, 서로 다른매수자에게
서로 다른가격으로 매각

<>국립전력공사(National Grid) =1990~91년. 12개 지역전력공급회사로
분리후 개별매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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