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물걸레청소기는 한국인의 삶을 읽은 대표적인 디자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청소기라는 서양 문화에 우리 문화인 물걸레질을 스며들게 한 것이다.

김장독 문화를 냉장고에 융화시킨 김치독냉장고도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한식기 특징을 감안한 동양매직의 한국형식기세척기도 그렇다.

이처럼 최근 국내 가전사들은 한국적인 컨셉트의 디자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여러 가전 업체들은 또 우리 고유의 것을 제품 디자인에 형상화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세계 5대 공모전에 드는 독일 iF전에서 우수디자인으로 뽑힌 삼성전자의
청소기는 한국적인 선을 형상화한 것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런 예들은 한국적인 가전제품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 가전의 인지도는 지금까지도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한 소비자조사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부 1천여명에게 갖고 싶은 가전제품을 꼽으라고 했더니 한국 브랜드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가전제품이 선진국 시장에서 아예 팔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냉장고나 텔레비전 에어컨 등은 상당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격면에서 상위에 드는 것이 없다.

브랜드 자체가 저가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국내 가전사들이 "CIDP"에 소홀히 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CIDP는 제품생산을 통한 기업이미지통합을 말한다.

한마디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키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가전업체 필립스는 "알렉시 라인"으로 통한다.

이 회사 제품을 디자인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시만의 독특한 선을
이미지화해 브랜드인지도를 높인 것이다.

제품은 그 회사의 얼굴이다.

이 얼굴은 기술에도 영향을 받지만 디자인과 기업문화 CI 등에는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결국 기술이 아닌 문화적인 부문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브랜드이미지를
올려야 한다.

국내 가전사들도 이미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정체성 갖기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삼성다운 맛과 멋이 흐르는 제품을 만든다"는 디자인
철학을 세워놓고 있다.

디자인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석굴암을 소재로 한국적인 디자인 철학을 정립해 CD롬에 담았다.

"단 한사람을 위한 기도공간"이란 제목의 이 CD롬을 세계에 뿌려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린다는 전략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