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하고 싶거든 봉급, 직급, 직종을 따지지 말라"

요즘 인력시장에는 이른바 "재취업 3불문"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이전 직장의 직종은 물론 봉급, 직급을 잊어버리고 취업눈높이를 대폭
낮추라는 말이다.

앞으로 실업자가 2백만명에 육박하는 대량실업이 장기화되면 "3불문"
현상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IMF이후 인력은행, 노동부지방사무소 등 취업알선창구에는 연일 몰려드는
구직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 사이에 대기업출신 간부사원이 월급을 절반이상 깍아 중소기업에서
다시 직장을 구하는 등 하향 재취업추세가 뚜렷하다.

최근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의 부장으로있던 이모씨(44.서울 홍은동)는
기업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실직, 서울인력은행의 전문인력 재취업코너 문을
두드렸다.

이씨는 재취업할 직장에서 받고자 하는 희망봉급을 월 1백50만원으로
써냈다.

이전 직장의 2백50만원보다 40%나 깍인 금액이다.

그러나 취업상담원은 사무직의 경우 재취업이 극히 힘들다며 희망금액을
20% 더 낮춰 1백만원으로 기입하라고 권고했다.

체력단련수당 등 이런 저런 복지혜택까지 감안하면 절반이상 줄어든
수입이다.

이씨는 당장 취업이 급한 처지라 할 수없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중소기업의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씨 외에도 희망봉급을 전 직장 그대로 적어내는 구직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30-40%씩 자진해서 감봉신청하고 있다.

그나마 실제 취업이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이상 대폭 깍는 구직자들이라는
것이 취업상담원들의 설명이다.

직급을 대폭 낮춘 경우도 많다.

지난해말까지 중소기업사장이었던 방모씨(56.경기도 광명시)는 IMF한파이후
영업이 부진, 지난해말 자진폐업했다.

인력은행의 문을 두드려 지난달말부터 외국대사관의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H그룹의 차장이었던 김모씨(41)는 지난달에 직장을 옮겼다.

이 과정에서 연봉 3천2백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깍였다.

직급도 중소기업의 과장으로 낮아졌다.

김씨는 "급여나 직급수준은 생각하지 않았다. 그나마 하고 있던 무역업무를
계속할 수있는 것 만해도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종불문도 확산되고 있다.

사무직 실직자의 경우 취업문이 극히 좁아 단순노무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한 이모씨(55)는 대기업이사로 있다가 최근 주차장
관리직으로 취업했다.

새로 마땅히 일할 자리도 나지 않는데다 경험을 살리고 노후생활비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대졸 사무직출신 귀농자가 늘고 있는 것도 직종전환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귀농희망자 가운데 절반이상이 대졸출신이다.

구직창구에는 대졸자들이 단순기능직 자리라도 취업하고자 한다는 의뢰가
많이 들어오지만 막상 구인직장에서 기존 직원들과 위화감을 우려, 채용을
꺼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취업전문가들은 앞으로 대량실업이 장기화되고 실업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면 재취업 하향지원추세의 강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 김광현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0일자 ).